'김 강사와 T 교수' '창랑정기(滄浪亭記)' 등 작품으로 주목받던 현민 유진오는 해방되자 절필을 선언하고 문단을 떠났다. 그리고 헌법학자로, 야당 정치인으로, 법제처장으로 문학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수필문학의 대가 금아 피천득은 1970년대 중반에 갑자기 절필을 선언했다. "어느 날 보니 내가 전보다 못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가 이유였다. 금아는 서초동 자택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절필 약속을 지켰다.
자발적 절필 작가들에게 그 이유는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사회적, 정치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절필을 선언하고 훗날 다시 문단으로 복귀하는 작가도 많다. 김주영, 박범신, 김영하, 고종석, 신경림도 이런저런 이유로 절필을 선언했다 다시 문단으로 돌아와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타의에 의해 절필하는 경우도 있다. '해빙기의 아침' '부초'로 70년대 최인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한국 최고의 인기작가였던 한수산은 1981년 5월 제주도에서 집필 중 보안사 요원에게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 그리고 노태우가 사령관이던 국군보안사령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신문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 내용 일부를 문제 삼은 것이다. 유난히 감수성이 뛰어났던 그가 고문으로 받았던 정신적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는 절필했고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했다.
절필을 강요받은 작가도 있었다. 신경숙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과 '전설'의 문장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걸려 여기저기서 절필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는 사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은 할 수 없다.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어서 글쓰기를 그친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라며 절필을 거부했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는 시인 김지하가 절필했다는 소문이 지난주 문단을 뜨겁게 달궜다. 신간 시집 '흰 그늘'의 출판사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이번 시집을 끝으로 더는 집필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시집 서문에 "마지막 시집이다/교정하지 않는다/마지막 다섯 줄 '아내에게 모심'/한편으로 끝이다/이제 내겐 어릴 적 한(恨)/'그림'과 산밖에 없다/끝"이라고 써 절필이 사실처럼 돼버렸다. 우리 문단에 김지하처럼 한(恨) 많은 시인을 찾기 어렵다. 상상 못 할 모진 고난에도 붓을 꺾지 않던 그다. 쉽게 절필할 그가 아니다. 문단이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