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비만 심각성' 공지후 영향 미쳤는지
최소한 통계 자료라도 냈다면 좋았을 것
그후 방송사 자체적 제재했다면 더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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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종편 예능 프로를 보다 깜짝 놀랐다. '밴쯔'가 출연한 것이다. 밴쯔가 누군가. 인터넷 먹방의 지존. 먹방 콘텐츠만으로 구독자 250만 명을 돌파하고 연간 10억의 수입을 올린다는 슈퍼스타다. 밴쯔는 한 상 가득 쌓인 음식을 깔끔하게 먹어치우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짜장면 10그릇을 13분에 해치웠다. 그의 먹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대리만족하며 열광한다. 그가 마침내 인터넷 방송을 평정하고 종편 방송 고정출연자가 됐다. 우린 이제 곧 지상파에서도 음식을 먹어치우는 밴쯔를 보게 될 것이다. 시청률만 오른다면 무엇이든 하는 방송사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방을 우려하는 시선도 없진 않다. 먹방에 채널권을 뺏겼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사실 먹방이 많긴 많다. 못 믿겠다면 직접 확인해 보면 안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할 것 없이 예능 프로 중 50% 이상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먹는 것과 연결된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다루는 예능은 예외 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해먹는다. 냉장고까지 통째로 들고 나와 요리 대결도 벌인다. 심지어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가서 한 끼 얻어먹는 예능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의 건강, 나아가 비만에 신경을 써야 하는 정부가 폭증하는 먹방에 우려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이 비만이고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이다.
그러나 먹방이 비만과 어느 정도 인과관계인지 밝혀진 것은 없다. 통계도 없다. 다만 추측만 가능하다. 방송에 맛집이라고 소개되면 도대체 그 많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다음날부터 식당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방송에서 탄수화물은 적게 먹고 버터와 육류 등 고지방 음식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다고 소개되면 실제 마트에서 버터 품귀 현상이 일어난다. 2년 전 실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심지어 삼겹살을 버터에 구워 먹는 삼겹살 버터구이까지 등장해 불티나게 팔렸다. 누군가 맛있게 먹으면 따라 먹게 되고, 좋다는 소문을 들으면 식당으로, 마트로 달려간다. 이게 먹방의 위력이다. 얼마 전 중학교 30명과 함께 '미래의 꿈'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요리사가 되겠다는 학생이 8명으로 단연 1위였다. 의사 변호사가 되겠다는 학생은 1명도 없었다. 이게 쿡방의 위력이다.
2013년 4월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뉴욕의 공공장소에서 500㎖ 이상의 탄산음료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 시민 3명 중 1명이 심각한 비만이라는 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패소 후 블룸버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것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다.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인 비만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자 인간의 수명을 늘리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저소득층 비만을 매우 심각하게 봤다. 부자는 알아서 살을 뺀다는 것이다. 중독성이 강한 탄산음료에 세금을 높게 매긴다고 해서 이미 맛에 중독된 저소득층의 소비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차라리 공공 장소에서 탄산 음료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게 효과가 있다고 본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논리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대용량 탄산음료가 대중의 건강에 좋은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블룸버그 시장이 제대로 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먹방 규제도 보건복지부 절차에 무리가 있었다.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우선 비만의 심각성을 공지하고, 먹방이 비만에 영향을 미치는지 최소한 통계 자료라도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후 정부의 인위적 규제가 아닌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규제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훨씬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먹방'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국민들도 꽤 많기 때문이다. 모처럼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