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악한 독서율로 어려움을 겪는 출판계가 그나마 반짝 여름 특수를 누리는 것은 여름휴가 때 명사(名士)들의 독서목록 때문이다. '명사들이 휴가지에 갖고 가는 도서'가 발표되면 확실히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여름휴가 독서목록은 발표될 때마다 '흥행이 확실시'되는 베스트셀러 보증수표였다. 도서목록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지난해 여름 고 노회찬 의원이 '김지영을 안아주세요'라고 적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82년생 김지영'은 그것만으로도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됐다.
미국 백악관도 해마다 대통령이 휴가때 읽는 책 목록을 발표한다. 처음부터 그런 제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1961년 라이프지는 잠들기 전 반드시 30분이라도 책을 읽었다는 '존 F 케네디의 애독서 10선'을 실었다. 이언 플레밍의 '007시리즈'는 이 목록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대통령의 여름휴가 가방에 들어가는 도서목록을 공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2010년 여름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지까지 들고갔던 조너선 프랜즌의 장편 소설 '자유'를 읽고 "굉장한걸!"이라고 했던 한마디로 이 책은 100만부 넘게 팔리는 초 베스트셀러가 됐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여름휴가 기간 읽을 도서선정에 공을 들여 매년 '독서 목록'을 공개해 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휴가를 떠나면서 휴가지가 어디인지, 휴가 때 무슨 책을 읽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도 따로 휴가 도서목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휴가에서 돌아온후 SNS를 통해 "책도 읽지 않고 무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휴가 중 읽은 '명견만리'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밝혔다. '명견만리'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음은 물론이다.
올해도 청와대가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자 출판계에선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기대했던 '여름 반짝 특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짧은 휴가기간에 정해진 목록의 독서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도 있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들의 독서목록에는 향후 국정운영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 메시지를 들을 수 없게 된 건 아쉽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