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우파의 경제 오류를 함께 비판하는 학자로 유명해진 조지프 히스는 저서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마티 刊)에서 낮은 전기요금으로 분배정의를 겨냥하는 좌파의 시도는 '공정가격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낮은 전기료의 혜택이 저소득층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수요 공급의 왜곡된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물건을 많이 사면 가격이 싸지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 전기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누진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용 전력량에 따라 처음 200kwh까지는 1kwh당 93.3원이다. 하지만 400kwh를 초과하면 1kwh당 280.6원으로 최대 3배를 더 낸다.
전기는 한국전력이 만든 상품이다. 하지만 적자가 나도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한전 주가는 2008년 8월 평균 3만1천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어제 주가는 3만450원. 10년 전 그대로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 2천504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분기 역시 수천억 원대 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생산원가는 오르는데 판매가를 올릴 수 없어서다. 그래도 망하지 않는 것은 적자를 정부가 메워주기 때문이다. 무슨 돈으로? 물론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누진제는 70년대 석유 파동 때 에너지 과소비를 막고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전제조건이 있다. 저소득층은 전기를 조금 소비하고 고소득층은 전기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저소득층의 전기 사용량이 많고, 소득이 많은 맞벌이 부부 등을 포함해 1~2인 가구의 전기사용량이 오히려 적다. 노약자가 많고, 다자녀 가구일수록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전기사용이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누진제가 명분을 잃었다는 지적이 이래서 나왔다.
그런데도 당정은 7·8월 두 달간 누진제를 완화해 주기로 했다. 1단계·2단계 누진 구간을 늘려 1단계는 200kwh에서 300kwh로, 2단계는 400kwh에서 500kwh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총 2천761억원의 요금인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혜택을 온전히 저소득층이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 요금인하 효과만큼 한전이 입을 손실은 저소득층 지원에 쓸 예산으로 정부가 메워주게 될 것이다. 전력만 풍족하다면 이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런데도 탈원전 정책으로 일관하는 정부.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