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가 판교·마곡과 비교해서
서울 도심 접근성은 나쁘지만
정주여건 비슷하고 비용면 큰 장점
인프라도 훌륭해 경쟁력 기대
쉬운 길보다 노력하는 길 택해야

경제전망대-허동훈10
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
오래전부터 송도에 개발밀도가 높은 R&D단지를 조성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R&D단지라고 해서 연구소만 들여오자는 것은 아니고 지식산업센터 같은 집합건물에 입주 가능한 도시형 제조업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송도는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토지를 공급하고 양산형 공장을 유치해서 수만 평의 부지에서 1천~2천명이 일하는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다. 반면에 판교나 마곡의 R&D단지에선 같은 면적에서 수만 명의 전문 인력이 일하고 있다. 후자가 전자보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데 판교나 마곡은 송도와 다르다는 반론을 간혹 접하게 된다. 여건이 더 좋은 그런 곳에서 하는 일을 따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대답을 들으면 반문하고 싶다. 송도에서 국제업무단지는 되고 R&D단지는 안 되는가?

인천시는 경제자유구역 출범 이전부터 송도에 다국적기업 지역본부 등 외국인투자기업의 오피스 비중이 높은 국제업무단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업무기능은 대외업무와 영업활동, 대면접촉을 하는 데 유리한 도심지역을 선호한다. 이미 높은 집적이 이루어진 곳을 좋아하는 것이다. 서울의 (강북)도심권, 강남권, 여의도권, 즉 이른바 3대 업무권역이 그런 곳이다. 외국인투자기업이 주로 활동하는 국제업무단지는 이런 곳보다 개발하기 힘들다. 애초에 게일과 포스코건설은 송도에 60개의 업무용 빌딩을 짓겠다고 했다. 지금 지어진 것은 6개 정도 된다. 그런데 공실률이 절반 가까이 된다. 특수한 사정 때문에 입주해있는 포스코 계열사들 때문에 그나마 그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송도에서 조성하기 어려운 순서대로 나열하면 국제업무단지, 업무단지, R&D단지, 공단이다. 관성적으로 국제업무단지 조성을 주장하면서 그보다 쉬운 R&D단지는 여건이 미흡해서 어렵다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업은 편익과 비용을 비교해서 입주할 곳을 선택하지 하나만 보지 않는다. 서울 출퇴근이 힘든 송도가 판교와 마곡과 비교해서 서울 도심 접근성이 나쁜 것은 단점이다. 하지만 정주여건에서 큰 차이가 없고 비용 측면에선 큰 장점이 있다. 인프라도 훌륭하다. 삼성 직원들이 일하기를 기피하는 심리적 저지선은 사업장이 있는 용인 기흥과 수원, 화성까지라고 한다. 송도는 그보다 멀지 않고 정주여건은 더 낫다. 비용을 따져보자. 서울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분양가는 평당 1천100만원대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지식산업센터 분양가는 평당 800만 원 전후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규모는 훨씬 크지만 편의시설과 기반시설이 부족하다. 인천의 지식산업센터 분양가는 대체로 원도심에선 평당 500만 원 전후, 송도에서 평당 500만 원대 중반이다.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 가격이 더 싼 편이다. 공업지역을 놓고 보면 원도심 땅값 시세가 송도와 큰 차이가 없지만 조성원가는 송도가 훨씬 낮다. 대기업엔 추가적 인센티브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10층이 넘는 집합건물 즉 빌딩을 지어 혁신형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을 유치할만한 경쟁력이 있다.

판교테크노밸리 성공에 고무된 경기도는 추가로 6개의 테크노밸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공사 중인 곳도 있고, 보상과 행정절차 때문에 착공하려면 몇 년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다. 그 대상지엔 판교 두 곳과 일산, 광명·시흥, 양주, 구리·남양주가 있다. 광명·시흥 첨단R&D단지는 목감IC 주변이다. 첨단R&D단지가 거기에선 가능하고 송도에선 안 되는가? 구리·남양주보다 송도가 여건이 나쁜가? 헐값에 땅 파는 것보다 제값에 파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쉬운 길보다 다소 어렵더라도 노력하면 갈 수 있는 길을 가야 한다.

/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