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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의 위력관계는 인정하나, 안 전 지사의 위력행사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반향과 후폭풍이 엄청나다. 여성단체의 반발과 저항이 예사롭지 않다. 한 여성단체의 집회에서는 '사법정의는 죽었다'는 피켓이 등장했고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는 유죄"라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미투 운동의 종결지여야 할 법원이 '성폭력 관련 사법논란'의 진원으로 주목받는 양상이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언 그대로 안희정 사건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피해자 김지은씨가 1심 판결에 대한 입장문에서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주장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여성단체는 "지난 7월 6일 비공개 피해자 심문에서 재판부가 김씨에게 '정조를 지키지 않고 뭘 했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

김씨와 여성단체의 전언대로 재판부의 '정조' 발언이 사실이라면, 1955년 박인수 사건 1심 판결문이 저절로 떠오른다. 박인수는 해군대위를 사칭해 70여명의 미혼 여성을 농락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장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며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에게 정조를 지킬 의무를 강제했던 유교문화가 정정했던 50년대의 판결이었다. 1994년 성폭력방지법 제정과 함께 '정조'라는 단어는 법전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2018년 법원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에게 '정조' 운운 했다면 시대착오적이다.

한국 남성들은 박인수 재판에서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1심 무죄판결만 기억하지만 항소심 판결은 달랐다. "댄스홀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내놓은 정조가 아니다"며 "고의로 여자를 여관에 유인하는 남성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박인수는 간음죄로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은 상고 기각으로 이를 확정했다.

피해자 김 씨의 의지와 여성들의 반발여론을 감안하면, 안 전 지사에게 4년을 구형했던 검찰의 항소는 당연해 보인다. 2심 재판의 판결이 주목된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