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합쳐 난관 극복해야 할 시점에
자기 몫 더 챙기려는데만 '급급'
지금은 어느 길 택할지 따지기전
누구와 함께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
국민과 인민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하는 것이 남한과 북한 정치의 본령이 아닐까. 영화 '공작'을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경제가 구현되는 구체적인 형상을 비즈니스라고 한다면 영화에서 비즈니스의 두 번째 형태라고 주인공이 거론한 것, '모험'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생각해 볼 만하다. 거기서 모험은 단지 사업 당사자의 이익 극대화를 넘어 사회적, 공공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음에 가슴에 와 닿는다. 내 이익을 위해 광고 사업을 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고자, 주인공은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이 보기에 어리석고 순진한 짓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관객에게 잔잔하게 오래 남는 연유이다. 사유성과 공공성이 아름답게 버무려진 그 접점, 난 그 영화의 백미를 거기라고 말하고 싶다.
생생하다. 초등학교 6학년 초겨울에 내게 던져진 화두.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사는 건 불가능할까? 이십년간 경제학 박사라며 먹고사는 문제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지만 내 한 입 거두는 것도 헉헉거리는 깜냥을 벗어나지 못할 뿐이다. 특히 요새 같이 세상이 힘들 때, 경제학자로서 나의 존재와 역량이 세상에 득이 될까, 하는 회의감에 안 빠질 수 없다. 소년시절 남한의 경제 수준은 세계 최저로 북한에 뒤졌을 정도였다. 지금,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라지만 경제적 만족도는 하위 10위권이라 할 만하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꿈꾸던 어린 소년은 이제 귀밑에 흰 머리가 듬성듬성해지고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입으로만 되뇔 뿐이다. 지금 나에게 소년 시절부터 품어왔던 것의 답을 내놓으라면, 먼저 손사래부터 치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해야 한다면 이렇다. 그 시절 문제의 핵심이 최저 수준의 경제였다면 지금 해법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에 담겨 있다고. 지금의 경제만족도가 세계 최빈국 시절보다 못한 건 왜일까? 거의 다 돈이 없었던 그 시절은 물질적으로 보잘것 없었지만, 공감과 공동체 의식으로 엮여 있었다. 지금은 유산분배 싸움을 하는 낯부끄러운 판국이다. 합심하여 유산을 뜻에 맞게 쓰고 잘 가꾸어 늘리는 대신, 자기 몫을 당장 더 챙기려는데 관심이 꽂혀있다. 이런 형국에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포용적 성장 등등. 아니면, 그런 것이 아니라는 측에서 들이미는 경제살리기 비법이 내놓아진대도 무슨 효험이 있을까.
경제가 탈 난 것을 탓하고 고칠 수 있는 권한과 영향을 가진, 필자를 포함하여 대부분은 폭염에서 자유로운 시원한 공간에서 전기요금 걱정 하지 않는 여유가 있다. 좋은 일자리에 좋은 집까지 있는 조건에서 '모험 비즈니스'를 기대하는 건 영화 같은 발상일 뿐일까. 진단과 처방이 엇갈릴 수는 있다. 세상일에 어찌 유일한 원인과 유일한 해답만이 있으랴.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는 여럿이다. 지금은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를 따지기 전에, 누구와 함께 산을 오를 것인가에 뜻을 모으고 행동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국면이다. 산꼭대기에서 목말라하는 국민은 목부터 축여야 한다. 폭염이 쌓이고 싸여 화산이 폭발해도 여전히 똑같은 비즈니스를 할는지. 석 삼 년 못 본 임이 오듯 가을이 오고 있다. 환절기,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여름을 물리고 있는 계절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나. 어리석고 순진한 비즈니스 계절은 오고 있는가?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