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北에 '공동발굴 하자'고 잇따른 제안
비무장지대내 성터 상당부분 그대로 방치
주목받는 이유는 경원선 복원과 맞물려 있어
경기도, 마식령·금강산 연결 관광특화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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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기 정치부장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궁예 도성'이다.

제4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를 위해 지난 8월 10~19일 평양을 방문한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북한 측에 DMZ(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궁예 도성' 남북 공동발굴을 제안했다. 앞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23일 강원도 철원군청에서 이현종 철원군수와 한금석 강원도의회 의장 등을 만난 뒤 궁예 도성 터 현장을 방문, 남북 공동 발굴 가능성을 타진했다. 원혜영 민주당 의원의 경우는 지난 5월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DMZ 궁예 도성 남북 공동발굴 추진 정책세미나'를 가졌다.

'궁예 도성'은 남북 간 DMZ 내 유해 공동발굴 추진에도 등장한다. 지난 7월 31일 열린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비무장지대 유해 공동발굴에 뜻을 모았던 남북 군 당국이 후보지를 5곳으로 압축했는데 그중 하나가 '궁예 도성' 유적지 근처다. 또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남북이 DMZ 안에 있는 369개의 최전방 감시초소 GP 중 10여 곳을 우선 시범적으로 철수하기로 했는데 여기에도 '궁예 도성' 근처 GP가 등장한다.

궁예(857?~918)는 우리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인물 중 한 명이다. 역사 속에 묻혀있던 그는 지난 2000년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탤런트 김영철씨의 몸을 통해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몰락한 신라 귀족 집안의 후손으로 알려진 궁예는 외가에서 태어나 어릴 때 버려진 뒤 승려가 됐다. 난세에 영웅이 태어나듯, 당시 진성여왕 시대는 어지러웠다. 출중한 솜씨를 가진 궁예는 892년 원주에서 일어난 반란군에 가담하면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다. 궁예는 강릉에서 개성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 지역을 장악한 뒤 901년 고구려의 부흥을 내걸고 태봉국(후고구려)을 세워 스스로 왕에 오른다.

역사는 궁예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관심법을 앞세워 기행을 일삼다 부하였던 태조 왕건에게 내쫓겼고 백성에게 붙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은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궁예는 신라의 골품제를 폐지하는 등 한국 중세사를 새롭게 연 혁명가였다고 말한다.

'궁예 도성'은 이런 궁예가 905년 수도를 개성에서 철원으로 옮긴 후 만든 태봉국의 수도다. 당시에는 드물게 평지에 건설된 신도시였고 외성의 길이가 12.5㎞, 높이는 10m에 이르렀다 한다. 또 내성이 7.7㎞, 궁성 1.8㎞로 기록돼 있다. 현재도 성터의 상당 부분이 남아있고, 제대로 발굴할 경우 유물도 다수 출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데다 남북 군사분계선이 도성의 한가운데를 양분하면서 그대로 방치된 상태다. '궁예 도성'이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 새롭게 주목받으며 남북 분단과 평화의 상징물로 떠오른 배경이다.

'궁예 도성'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일단 남북이 합의한 철도 복원 계획에서는 제외됐지만, 복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갈수록 힘이 실리고 있는 경원선과도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경원선은 서울~원산(元山)을 잇는 철도로 길이 223.7㎞이며 1914년 9월 16일 전 구간이 개통됐다. 오늘날에는 국토 분단으로 용산역~의정부~동두천~연천을 거쳐 백마고지 역 사이의 94.4㎞만 운행되고 있다.

'궁예 도성'은 이런 경원선이 복원되면 백마고지 다음 역인 월정리 역에서 불과 1㎞ 정도 거리다. 경기도는 이에 맞춰 경원선 복원 시 '궁예 도성'과 원산 근처의 마식령과 금강산을 연결하는 관광노선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궁예 도성'의 복원은 곧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의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예 도성'에서 시간을 되돌려 궁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김순기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