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유사'는
보각국사 일연(1206~1289) 시대
고려본이 아니라
1512년 경주부윤 이계복이 펴낸
정덕본 또는 중종임신본이다

전문가 조성면2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
우리는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산다. 일상적 대화에서 소설·역사·뉴스·영화·게임·드라마 등 찬찬히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온통 이야기들이다. 이야기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유발 하라리(1976~)도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 전역에 퍼져나가면서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가지지 못한 민족은 존속할 수 없다. 신화 · 전설 · 민담은 이야기의 조상이며, 민족적 정체성의 근간을 이룬다.

'삼국유사'는 이야기의 보물창고요, 역사며, 민족문화의 밑바탕이다. 우리가 신화와 이야기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은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삼국유사'(이하 '유사') 덕택이다. 단군신화와 가락국기에 김유신 · 만파식적 · 선덕여왕 등 '유사'는 가히 국민적 스토리들이요, 문학과 사상과 역사를 포괄하는 종합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조동일 교수는 '삼국사기'를 정사로 중시하고 '유사'를 야사로 보는 관점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유사'를 '대안사서'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유사'는 보각국사 일연(1206~1289) 시대의 고려본이 아니라 1512년 경주부윤이었던 이계복이 펴낸 정덕본(正德本) 또는 중종임신본(中宗壬申本)이다. 임신본보다 앞선 판본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연대를 확인할 수 없고 임신본보다 시기가 앞서면 관행상 고판본이라 통칭한다. '유사'의 완질본은 서울대 규장각, 고려대 도서관, 덴리대 도서관 소장본 등을 꼽을 수 있다. 덴리대 소장본은 순암 안정복(1721~1791)의 수택본으로 1916년 이마니시가 입수했고, 다시 이를 덴리대학이 소장하게 된 것이다. 그 밖의 낙질본 혹은 영본으로 육당 최남선(1890~1957)이 가지고 있던 고려대학 소장 광문회본과 연세대학이 소장한 파른 손보기(1922~2010)의 파른본 등을 꼽을 수 있다.

해방 후 '유사'의 최초 번역본은 1946년 사서연역회가 임신본을 저본으로 하여 고려문화사에서 펴낸 판본이다. 사서연역회는 김춘동 · 이가원 · 이민수 · 홍기문 등 당대 최고 지성들의 모임이었다. 사서연역회의 국역 이후, '유사'의 번역은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종열(1954), 이병도(원문병역주 삼국유사, 1956), 이재호(1967), 이민수(1975), 권상로 역해본(1978), 성은구 역주본(1981)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 나온 '유사'의 번역본으로는 리상호 역주본(1960)이 있다. 이는 1999년 도서출판 까치에 의해 국내에서도 출판된 바 있다. 북한판 '유사' 번역본은 철저한 한글전용 원칙과 대중친화용 원칙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단군신화의 풍백(風伯) · 우사(雨師) · 운사(雲師)를 각각 바람 맡은 어른 · 비 맡은 어른 · 구름 맡은 어른으로, 심지어 만파식적(萬波息笛) 같은 고유명사마저 '거센 물결 잠재우는 젓대'로 번역하는 등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한국의 문화원형인 '삼국유사'는 막상 독서용이나 참고자료로 이용하려 하면 지나치게 많거나 지나치게 없으며, 너무 알려져서 읽었다 착각하고 아예 안 읽는 '말로만 고전'으로 남아있는 게 아닌가 하여 매우 안타깝다.

몇 해 전 단골 고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가에 꽂혀있는 사서연역회의 '삼국유사'를 한참 망설이다 구입했다. 당연히 사야 할 책이었건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고민하다 결국 골랐던 다른 책들을 포기하고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꼭 사야 할 고서라면 망설임 없이 즉시 구입해야 한다. 삶도 책도 그 순간이 지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일기일회(一期一會)가 아니던가.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