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이 사회는 명문대학 프레임
산업시대 교육 허상에 갇혀 있다
정부, 근본적 위기 이해하고 있는지
개혁 당위성 불구 장관 교체 그쳐
'재정논의로만 맹목 대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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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한 국가에서의 교육에는 여러 가지 목표가 있다. 교육의 일차적 목표는 개인에게 필요한 전문지식과 직업 적합성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그와 함께 교육에는 정치적이며 존재론적 목표와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교육은 국가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리와 토대로 작동한다. 국가가 성립되기 위한 외적 실재를 넘어 국가를 구성하는 원리와 국민적 동의를 보편적으로 국가 구성원에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정치적 함의이다. 나아가 교육은 근대 대학의 원리에서 보듯이 개인의 자아와 존재를 실현하는 문화교양 교육이란 존재론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 교육의 정치적 원리는 헌법에서 규정한 대로 민주제와 공화정으로 표현된다. 또한 전문지식교육이란 측면에서는 근대화와 함께 교육에 담긴 근본적인 교양교육의 원리가 토대로 작동한다.

지난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집회는 교육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과 그 과정에서의 온갖 비리에 대한 항의가 이 집회를 촉발시켰지 않은가. 촛불 집회의 혁명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는 별개로 이 과정에서 나타난 시민의 정치적 의사는 이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의 토대일 뿐 아니라, 그 목소리에 국가의 원리에 대한 구성원의 포괄적 합의가 담겨있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촛불 집회의 시작은 교육에 대한 개혁 요구였다. 그런 만큼 이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과 과제에서 교육이 지니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굳이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너무도 아쉽게도 지난 1년 반 동안의 교육 정책은 이런 요구에 대해 또 다른 절망을 안겨준 시간이었다.

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 정도가 지옥과도 같은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라는 요구에 대한 대답으로 충분했던가? 이른바 명문 대학이란 허상을 향한 부나비 같은 질주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교육이 공공재이며, 공동선이란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임에도 80%가 넘는 사학재단에 대한 공공성 개념은 조금도 실현되고 있지 않다. 분잡하게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고 혁신 경제를 외치면서도 교육은 여전히 산업시대 패러다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70~80년대 이 나라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던 산업시대 교육 패러다임은 이제 후기 자본주의를 넘어 포스트 자본주의를 거론하는 시대를 겨냥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런 변화는 전혀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교육 관료들이 공공성과는 무관하게 교육정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거시적이며 장기적으로 교육의 내용과 지향성을 설정해야 함에도 1년 단위로 장관을 교체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관료들과 재정정책에 종속되어 지극히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 안주하고 있다. 교육개혁을 거부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교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고등교육 정책은 더 한심하다. 촛불집회의 촉발제 역할을 한 배후에 대학 재정지원 사업의 불합리함에 대한 항의가 있었음에도 그 이후 이름만 바뀐 그 정책은 여전하다. 얼마 전 있었던 가짜학술지와 가짜 학회소식을 생각해보라. 한국 대학의 현실이 얼마나 교육의 목적과 무관하고 심지어 반교육적인지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을까. 그럼에도 이 사회는 그저 명문대학과 산업시대 교육에 대한 허상에만 갇혀있다. 정시 비율 조정 정도로 이 불합리한 체제가 바뀔 수 있을까. 이 나라의 교육과 학문은 죽어가고 있다. 지금 산업화 이후의 교육제도와 정책에 대해 철저히 돌아보고, 교육의 목적과 지향성을 바탕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감히 말하지만 이 국가의 미래를 장담하기란 너무도 어렵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인문학, 공학 위기 선언이나 입시제도의 맹목성 따위는 이런 위기를 보여주는 수많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이 정부는 교육에 당면한 이런 근본적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고나 있는 것일까. 교육의 공공성이나 미래 지향성을 위한 국가교육위원회 공약은 그냥 정권용인가. 교육과 학문이 처한 근본적 위기와 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장관 교체만으로, 또는 재정 논의만으로 대처하는 이 맹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