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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했다. 책을 너무 읽어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모친 혜경궁이 늘 노심초사했을 정도다. 부친 사도세자의 죽음을 본 이후, 계속되는 정적들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은 독서밖에 없었다. 정조는 '살기 위해' 책을 읽었다. 덕분에 정조는 누구와 학문 논쟁을 벌여도 결코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것도 독서와 무관하지 않다. 규장각의 학자들을 활용하여 서적을 편찬하고 정책을 마련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묻곤 했다. 신하가 답을 못하면 "독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공무로 바쁘다 해도 하루에 한 편의 글도 읽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는 꾸지람이 이어졌다. 정조는 184권 100책으로 이뤄진 방대한 분량의 홍재전서도 남겼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런 왕은 없었다.

수원이 인문학도시라고 표방하고 나선 것은 화성이 있고, 책을 좋아했던 위대한 군주 정조가 있어서다. 2005년 수원시가 '평생학습도시'를 선포한 후 시민이 주도하는 평생학습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늘 책을 가까이했던 정조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모든 왕이 그렇지만 정조는 특히 세자 시절부터 서연(書筵)에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혹독한 교육을 받았다. 평생학습의 모범사례였던 것이다.

오는 6일부터 5일간 수원에서 전국 각지의 출판물과 도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수원 한국지역도서전'이 열리는 것은, 그래서 뜻깊다. 이번 주제는 '지역 있다, 책 잇다'이다. 지역 출판이 여기에 있고, 책으로 사람과 지역을 잇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행사가 열릴 때마다 늘 궁금한 게 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지역을 연결할 수 있을까.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도대체 책이 뭐길래. 하지만 이런 자리마저 없다면 책은 점점 더 우리에게서 멀어져 매우 낯선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도 만날수록 정이 들듯, 책도 자주 만나 읽고, 보듬어야 내 것이 된다.

괴테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수많은 고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했다. 셰익스피어도 "생활 속에 책이 없다는 것은 햇빛이 없는 것과 같으며, 지혜 속에 책이 없다는 것은 새 날개가 부러진 것과 같다"고 설파했다. 올해는 '책의 해'이기도 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책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