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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방조제 도로로 연결돼 섬이랄 수도 없지만 대부도는 대교로 연륙된 선재·영흥도로 이어지는 수도권의 드라이브 명소다. 대부도를 찾으면 포도원들이 줄줄이 눈에 띈다. 도로변에는 포도농가들이 그럴듯하게 작명했지 싶은 '비가림 포도'나, '알솎음 포도'를 판매하는 간이매대가 늘어서 주말 행락객을 유혹한다.

포도는 포도주, 즉 와인으로 가공돼야 부가가치가 급상승한다. 문제는 국내에서 와인을 제조해도 시장의 호응이 신통치 않은 점이다. 서구의 와인문화가 워낙 독보적이라서다. 와인이 빠진 그리스·로마의 신화를 상상하기 힘들다. 플라톤은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 예찬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초로 행한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고, 최후의 만찬에서는 포도주를 자신의 성혈로 여기라 했다. 신화시대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기독교의 제의에 이르기까지 포도주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와인으로 숙성된 서구문화인 만큼 프랑스, 이탈리아의 유럽이 와인산업을 장악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여기에 대항해시대 유럽에 정복당해 와인문화권에 포함된 남북아메리카가 가세해, 글로벌 와인시장을 놓고 벌이는 유럽중심의 구세계와 칠레와 미국 등 신세계 사이의 시장쟁탈전이 치열한 실정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이후 와인시장이 확장된 국내에서는 구세계 와인을 고급주로, 신세계 와인을 대중주로 취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지난 주말 명품 포도밭 대부도에서 와인 페스티벌이 열렸다. 대부 포도로 만든 지역 와인 '그랑꼬또'를 알리기 위한 축제였다는데 각계 명사와 일반 와인 애호가들의 시음평이 좋았다고 한다. '그랑꼬또(Grand Coteau)'는 불어로 큰 언덕을 뜻한다. 큰 언덕 대부(大阜)를 곧이 곧대로 상표로 옮겼으니, 작지만 강한 자존심이 프랑스 전통 와이너리 못지 않다. 그래서인가 출시 19년만에 그랑꼬또는 아시아 와인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차지하며, 국내외 소믈리에에 극찬을 받는 와인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대부 포도의 품질을 믿고 19년 동안 와인을 빚어온 대부도 토박이 김지원 그린영농조합 대표의 뚝심이 있었다.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있다는 말처럼, 그랑꼬또는 오랜 세월 김 대표의 희로애락으로 숙성됐을 것이다. 조급증이 일상화된 시대에 시간이 일으키는 기적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해본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