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 혐의 가상사건 공방전
시민 배심원 실제절차대로 평결
"법조와 시민간 소통의 장" 의미


판사와 피고인(시민),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역할을 바꿔 법정공방을 펼친 이색적인 모의국민참여재판이 10일 인천지법에서 열렸다.

인천지법이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과 법원의 날(9월 13일)을 맞아 이날 오후 2시 인천지법 대법정에서 개최한 '시민과 함께하는 공감법정'에는 인천지법 판사 3명, 인천지검 검사 2명, 인천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2명, 시민 11명이 참여했다.

이날 법정은 평소 재판에서는 불가능한 구성으로 진행됐다. 합의재판부는 허준서 부장판사(형사15부)가 재판장을 맡고, 나머지 2명의 판사는 임풍성 검사와 서은미 변호사로 구성됐다.

공판검사단은 변호사·판사·대학생이 참여해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검사·판사·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이 맡아 피고인을 방어했다. 모의재판에서 주거침입강제추행 혐의를 받은 피고인 역할은 남요셉 판사가 했다.

30대 남성이 새벽 시간 옆집에 혼자 사는 20대 여성의 집에 몰래 침입해 가슴을 만지고, 목을 조르며 옷을 벗기려 하는 등 강제로 추행한 혐의를 받은 가상의 사건을 다룬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이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가 달아나는 범인의 뒷모습만 봤다는 점 ▲피고인이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점 ▲피해자의 손톱에서 검출된 DNA가 피고인의 것으로 특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의 양말에서 나온 동물의 털이 피해자가 기르는 고양이의 털인지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다.

피해자, 범행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 2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의 역할도 모두 판사가 맡았다.

검사석에 앉은 변호사는 "피고인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여러 차례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함에도 불응하고, 목에 난 상처(피해자가 긁었다고 주장한) 등에 대해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며 "DNA 검사 결과도 개개인을 특정할 수 없다고 하나, 피고인과 같은 부계인 사람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등 여러 증거가 범인임을 입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 역할을 맡은 검사는 "피해자 진술은 평소 피고인에 대한 선입견으로 기억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고, 수사기관도 다른 범인의 존재 가능성을 살피지 않고 범인을 피고인으로 예단한 측면이 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DNA 검사 결과를 피고인으로 특정하진 못했다"고 맞섰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대표 9명은 실제 국민참여재판과 똑같은 절차에 따라 유·무죄에 대한 평결과 양형 토의를 진행했다. 배심원들의 판단은 무죄 5명, 유죄 4명으로 갈렸다.

만장일치가 되지 않아 다수결에 따라 무죄 의견을 재판부에 알렸다. 피해자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 계기가 신빙성이 떨어지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배심원 의견이었다.

모의재판부도 배심원들의 의견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인욱 인천지법 법원장은 이날 재판에 앞서 "인천지역 법조인들이 서로 역할을 교환해보는 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인천 법조와 시민 간 소통의 자리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