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청문회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1787년부터니 햇수로 230년이 넘었다. 연방정부 공직자의 임명 권한을 놓고 대통령과 상원의원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자 '선 대통령 지명, 후 상원 인준'으로 선을 긋고 시작한 게 청문회였다. '도덕과 이념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리는 미국청문회는 그 목적과 범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 정쟁으로 악용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2000년 6월 헌정사상 최초로 이한동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2003년엔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이, 2005년부터 국무위원을 청문회에 포함했다. 원래 공직을 수행해 나가는데 적합한 업무능력이나 인간적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위장전입, 논문표절, 투기 의혹, 병역비리, 이중국적 등 사적인 것을 끄집어내 흠집 내기로 시작됐다. 여야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품격 없는 후보자와 의원들의 자기편 감싸기로 청문회는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같은 문제로 청문회가 늘 시끄럽자 문재인 정부는 '고위 공직 후보자 임용 7대 비리 배제 원칙'이란 기준안을 만들었다. 위장전입, 불법적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 7개 조항에 위반되면 공직에 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제도를 처음 적용한 인사청문회가 10일부터 시작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8번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난 헌법재판소 재판관에서부터 아직 청문회를 하지 않았지만,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지역구 사무실 특혜 입주 의혹과 위장전입 전력에 이어 불법적 비서관 채용 문제까지 불거졌다. 7대 원칙이 무색해 진 것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관중(管仲)은 '관자'(管子)에서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禮義廉恥)을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다스리는 4가지 뼈대(四維)로 보았다. 이 중 한 개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근간이 흔들리고, 넷 모두 없으면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20년도 안 된 청문회를 오랜 연륜의 미국과 비교한다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7대 원칙이 세워 진 이상 스스로 여기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면 사퇴하던가 청문회에 서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이야말로 염치가 없는 것이다. 염치가 없는데 예의가 있을 리 없다. 어찌 이들을 믿고 법과 교육을 맡기겠는가.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