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떠나 살아가는 비극적 역사 속
삶의 터전 일구고 관습 지키는 행위
재외동포작가 작품 4가지 주제 분류
가슴 먹먹한 울림… 11월 25일까지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에게서 유래된 말이다.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야 했지만 타지에서 그들은 유대인의 규범과 관습을 잊지 않고 지키며 살았다.
디아스포라는 그래서 단순히 '이산'의 의미만을 담는 것이 아니다.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낯설고 척박한 타국의 땅에 삶의 터전을 일구고, 그럼에도 뿌리를 잊지 않고 공동체의 관습을 지켜내는 위대한 행위다.
그런 면에서 '경기 천년'을 맞아 경기도미술관이 다소 무겁지만, 한국의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선택한 건 어쩌면 필연일지 모르겠다.
최은주 관장은 "경기도의 역사는 지방사라고만 한정지을 수가 없다. 수도 한양과 개성을 품고 있었고 이 곳에서 역사의 중요한 장면이 모두 펼쳐져, 오히려 '중앙사'에 가까운 지방사다. 이 전시도 우리 민족의 첫 해외 이주가 인천항에서 하와이로 떠나는 이들이었다는 사실이 단초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20세기 현대사에서 우리만큼 세계 곳곳에 디아스포라를 뿌리내린 민족이 또 있을까.
전시는 단순히 재외동포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기억, 이산의 역사' '근원, 뿌리의 정체성' '정착, 또 하나의 고향' '연결, 이산과 분단을 넘어' 등 4가지 주제로 세분화해 우리의 디아스포라를 이해하는데 집중했다.
대부분 회화작품으로 구성된 전시는 마치 커다란 역사책을 펼쳐 놓은 듯 곳곳에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아픔들이 가득하다.
특히 1부 전시 '기억, 이산의 역사'는 구한말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났던 이들의 비참한 기억이 담겼다.
구한말 농민과 노동자들이 기근과 빈곤, 압정을 피해 국경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로 이주해 불안정한 신분으로 농지를 개간하는 모습이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대규모 한인들이 광산, 전쟁터로 끌려간 기억, 소련 지도부의 명령에 의해 17만여 명이 강제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이주당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2부와 3부는 전쟁이 끝났음에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재외동포들이 그 곳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야 했던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차별받고 구분짓기를 당해야 했고 그래도 그 사회 안에서 뿌리 내리고자 노력했던 그들의 일상 풍경과 속에서 곪았을 정체성에 관한 끊임없는 고민이 전시장 가득 묻어난다.
4부에 이르면, 그럼에도 뿌리를 잊지 않고 멀리 떨어진 조국의 소식에 귀 기울이고 함께 공감하고자 노력했던 작가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같은 정치적 상황을 피카소 '게르니카'를 본따 표현한 그림과 '자이니치'라 불리며 차별받는 재일동포 3세가 차별의 벽을 허물기 위해 감행한 예술적 시도 등도 소개됐다.
전시를 모두 둘러보면 가슴 한 편이 먹먹함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것에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생각해보면 추석은 이 땅에서 봄부터 애써 키운 곡물을 가족, 이웃과 배불리 나누는 우리 고유의 풍습에서 비롯됐다.
이번 추석 명절은 가족과 함께 미술관을 찾아 이들의 작품과 마음을 나누는 일도 뜻깊은 명절을 보내는 방법일테다. 전시는 11월 25일까지 계속된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