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많은데 비해 노벨과학상 수상자 없어
'정년퇴직자의 경륜' 연구기회 제공해 볼만
사회적 자산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
100세시대 맞아 정부·대학 함께 고민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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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천산만홍의 10월이 되면 세계인들의 이목이 복지천국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쏠린다. 117년 역사의 노벨상 축제행사가 이들 두 나라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경제학상 수상자에게는 900만 스웨덴 크로나(11억2천여만원)의 상금과 상장뿐 아니라 '세계최고의 인물'이란 영예까지 주어진다. 노벨재단은 기금의 고갈을 우려해서 2012년부터 상금액수를 기존의 1천만 크로나에서 800만 크로나로 삭감했다가 지난해부터 900만 크로나로 인상했다. 2014년 파키스탄의 17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2016년 미국 팝가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거부는 화젯거리였다.

스웨덴 국적의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세계거부 반열에 올랐으나 '죽음의 상인'이란 낙인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개발한 폭약이 전쟁무기 혹은 테러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무수한 생명들이 희생된 탓이다. 이후 그는 인도주의사업에 팔 걷고 나섬은 물론 임종 무렵에는 3천100만 크로나를 유산으로 남기며 국적을 불문하고 인류평화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는데 사용해줄 것을 당부했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는 미국이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순이며 일본은 12위(24명)로 43억여 아시아인들의 체면(?)을 살렸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 교토대 교수가 '중간자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3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 등 다채롭다. 중국도 9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기록했으며 타이완의 리위안저(李遠哲) 박사는 1986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해 대만 과학기술의 저력을 각인시켰다. 경제발전과 노벨상 수상자 숫자 사이에 상관관계가 밀접함을 확인할 수 있어 부럽다.

한국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상한 노벨평화상이 유일하다. 경제, 스포츠, 대중문화 분야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진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 민망하다. 최근 미국의 투자정보 사이트 하우머치가 유네스코의 자료를 근거로 세계 각국의 R&D투자액 순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R&D투자액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이다. 논문 양으로 세계 10위권임에도 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을까?

전문가들은 새로운 혁신을 이끌 수 있는 패러다임 창출전환형 연구 비중이 낮은 때문으로 진단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 30년간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패턴을 분석한 결과 '패러다임 창출 및 전환형 연구'가 87.1%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형 연구는 장래가 불확실하고 과학적 중요성을 가늠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연구비도 지원받기 힘들어 연구자들이 기피하는 1순위 분야이다. 전인미답의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연구자들은 돈키호테로 치부된다.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정부나 기초과학 경시의 과학계 풍토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 내지는 연구자의 장인정신, 기다릴 줄 아는 유연한 연구환경 등은 더욱 중요하다. 2015년에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투유유 교수는 190번 실패해도 계속 매달려 191번째에 노벨메달을 거머쥐었다.

정년퇴직 교수에 눈길이 간다. 노교수들의 연구경륜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경우 65세가 넘어야 오히려 더 원숙한 학문적 성과를 낼 토양이 갖춰지는 경우가 많다. 모 이공계 은퇴교수는 "시설이 없어 연구를 접었다"며 아쉬워했다. 정년퇴직이라는 획일적 기준으로 무장해제 하는 것은 고령사회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사회적 자산인 퇴임교수들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낭비이다. 대부분 연금생활자여서 경제적 부담도 적어 희망자들에 연구기회를 제공해봄 직하다.

2020년부터 정년퇴임 교수가 양산될 예정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교수의 지적자산을 사회적 공공재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