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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에서 옛 은사님을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 중 은사님이 이렇게 물었다. "자네 요즈음 무슨 책 읽나?" 의외의 질문이라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이런 질문을 최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누구에게 "지금 무슨 책 읽어?"라고 물어본 적이 없다. 만나는 사람에게 "밥 먹었어?" 라는 말은 수없이 하면서도 "무슨 책 읽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사는 것이다.

열어둔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는 건 책 읽기 좋은 가을이 왔다는 것이다. 설악산 단풍 소식은 책을 읽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왔음을 의미한다. 올해가 '책의 해'라는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민이 책을 너무 읽지 않으니 정부가 25년 만에 올해를 '책의 해'로 지정했다. 매달 책과 연관된 행사들이 지난 3월부터 연말까지 꾸준히 끊이지 않고 열린다. 하지만 이에 관심을 두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세종은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어제 한글날, 언론들은 세종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가장 으뜸으로 '한글'을 꼽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건 백성이 쉽게 글을 읽게 하기 위함이다.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라고 밝혔듯 왕은 혼자만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게 백성들에게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책 읽는 재미를 백성 모두가 공유하길 왕은 진정으로 원했을 것이다. 아무리 미디어 시대라지만 한글창제 572돌을 맞는 지금, 우리의 독서율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루 평균 200권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출판량에도 불구하고 독서율은 OECD 최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 펴낸 '국민독서실태조사'보고서를 보면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65.3%였다. 2017년엔 60%로 더 떨어져 성인 10명 중 4명이 일 년 동안 책을 단 1권도 읽지 않았다. 왕의 깊은 뜻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책 읽기의 일상화'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이 순간만이라도 독서삼매경에 빠져야 할 때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은 한 달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리고 100일도 남지 않았지만 '2018년 책의 해'만이라도 이런 인사말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무슨 책 읽어?""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