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부터가 배달, 백달에서
유래되었으며
배달겨례와도 뜻이 통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나타냈다
박달나무는 여러 고서에 기록이 남아있다. 중국의 진서(晉書)에는 박달나무로 만든 활 '단궁'이 기록되어 있는데 단궁은 지금의 강원도와 경북지방에 위치한 소국인 동예의 특산물로 고구려의 맥궁과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 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쓰인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환웅이 강림한 태백산 신단수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데 중국 기록을 옮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달이란 우리말 이름의 어원부터가 배달(倍達), 백달(白達)에서 유래되었으며 배달겨레와도 뜻이 통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나타냈다. 중국명은 초유(楚楡)라 하는데 회초리에 사용되는 단단한 나무라는 뜻이며,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찍으면 도끼가 부러진다 하여 오노오레(斧折)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박달나무는 한민족의 희노애락이 담긴 나무이다. 건국신화에서부터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우리 조상들의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무이기도 했다. 박달나무는 비중이 1에 가까워서 마른 나무도 물에 가라앉을 만큼 재질이 매우 무겁고 단단하며 조직이 치밀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거나 실생활에 꼭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데 쓰이는 없어서는 안 될 나무였다. 농사의 필수품이던 쟁기, 디딜방아의 방아공이를 만들고, 항상 무명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풀을 먹여 입던 우리 민족이 늘 옆에 두었던 다듬이 판과 방망이, 그리고 홍두깨까지 박달나무로 만들어 이용해 왔다. 조선시대 16세 이상 남자들의 신분증명서인 호패, 여인네들의 미모를 가꾸던 얼레빗이나 절편에 무늬를 찍는 떡살, 함지박 같은 목기류, 윷놀이에 쓰는 윷도 박달나무가 으뜸이었다. 포졸이 들고 다니던 육모방망이로도 쓰였는데 도둑을 잡기도,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매질하여 죗값을 철저히 치르게도 했지만 때로는 서슬 퍼런 권력의 과시와 수탈을 위한 수단으로도 이용돼 민초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박달나무는 자작나무나 거제수나무처럼 곡우에 나무줄기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받아 마신다. 이는 한 신라 화랑이 수련 중에 물을 찾아 뛰어 가다가 박달나무에 걸려 넘어지면서 나무가 부러졌는데 거기서 흘러나온 물을 먹고 갈증을 해결했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의 잎이 지는 넓은잎 큰키나무이다. 한반도와 일본, 중국, 러시아 극동지방에 분포하며 주로 깊은 산에서 군락을 지어 자란다. 높이 30m, 지름 1m까지 자라기도 하지만 목재로 워낙 다양하게 쓰여 왔기에 거의 벌채되어 큰 나무는 보기 쉽지 않다.
잎은 끝이 점점 뾰족해지는 달걀모양으로 가장자리에 불규칙하고 날카로운 잔 톱니가 있으며, 가지에 어긋나게 달리는데 가을에 노랗게 물든다. 5,6월에 피는 꽃은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달리며 수꽃꽃차례는 밑으로 처지고 암꽃꽃차례는 곧게 선다. 9월에 열리는 타원형 열매는 작고 두꺼운 껍질에 쌓여 있다.
남쪽까지 단풍이 내려앉았다. 쾌청한 하늘 아래 가을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단풍과 함께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행복한 설렘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박달나무의 노란 단풍과 붉은 가을 손님의 고운 자태를 함께 하는 것은 어떨까?
/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