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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흰 지팡이의 날'이다. 그동안 이런 날이 있는 줄도 몰랐다. 무관심 탓이다. 제정된 지도 올해로 벌써 39년째가 됐다. 그런데도 몰랐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눈' 역할을 하는 그 지팡이다. 1946년 미국 육군병원 안과의사 후버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고안했다.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쉽게 식별하고 길을 양보하거나 운전자가 서행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980년 헬렌 켈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세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10월 15일을 '흰 지팡이의 날'로 공식 제정해 전 세계에 선포했다. 선언문엔 '흰 지팡이는 동정이나 무능의 상징이 아니라 자립과 성취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우리나라에서 흰 지팡이에 대한 규정이 마련된 것은 1972년 도로교통법에서다. 도로교통법 제11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도로를 보행할 때는 흰 지팡이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48조에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어린이나 유아가 보호자 없이 걷고 있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흰색 지팡이를 가지고 걷고 있을 때에는 일시 정지하거나 서행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딱 '거기 까지다. 시각장애인에게 도심은 여전히 거대한 정글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장벽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흰 지팡이를 의지해 도심에서 50m를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는 더 끔찍하다. 비장애인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겁날 정도로 '우선멈춤'을 지키는 차는 거의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들에겐 비장애인의 '배려'가 꼭 필요하다.

누군가 흰 지팡이를 든 사람이 있다면 운전자와 보행자가 모두 그들에게 '배려'할 준비를 해야 한다. 흰 지팡이의 날을 제정한 것도 비장애인들에게 그런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배려'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말이 선진국이지 장애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이 살기 얼마나 힘든 나라 인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 장애인 중 90% 정도가 후천적 장애인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장애를 입을 수 있다. 모든 장애인에 대해 우리 사회가 따뜻한 '배려'를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