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전쟁과 세계 평화 포럼 3차 섹션1
지난 12일 오후 인천 송도국제도시 G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인천의 전쟁과 세계 평화 포럼'에서 '러일전쟁 그리고 인천'이라는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러일전쟁 서막 日 어뢰공격탓 주장
"韓·中 남의 땅서 벌인 전투" 지적
신미양요 "한국, 열강에 맞선 저항
美 '원정'이라 불러" 인식차 소개도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의 지배권을 두고 벌인 '러일전쟁'(1904~1905). 전쟁 당사국들은 전쟁 발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역사 논쟁을 벌이지만, 중국과 한국은 '남의 땅에서 벌인 제국주의 열강의 전투'라는 역사적 상처를 갖고 있다.

'신미양요'(1871)는 한국 입장에서는 '침략', 미국 입장에서는 '원정(遠征)'이다.

지난 12일 열린 인천의 전쟁과 세계 평화 포럼의 2~3부 세션은 하나의 전쟁을 두고 세계의 다양한 시각이 공존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드미트리 파블로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러시아 역사연구소 부소장은 '러일전쟁의 서막을 연 제물포 해전'이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를 통해 "러일전쟁의 시작은 일본의 수뢰함이 러시아의 코레예츠(Koreets)호에 대해 제물포 인근 해역에서 어뢰 공격을 한 것으로 시작됐다"며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전범은 이 전쟁의 발발의 책임이 있는 일본"이라고 밝혔다.

1904년 2월 8일 오후 4시 40분께 일본의 제4전대와 러시아의 코레예츠호가 맞닥뜨린 사건이 이 전쟁의 시작이라는 얘기다.

미와야키 노보루 일본 리츠메이칸대 정책학과 교수는 '러일전쟁 : 인천 전투와 전쟁 포로의 목격'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드미트리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사건을 '약간의 교전(small battle)'이라고만 표현했다.

그러면서 "서로 간 위협적인 제스처(gesture)를 하면서 움직인 군사적 대치상태"였다고 했다.

리용치 중국 옌볜대 역사학과 교수는 이 둘의 발표가 끝난 후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지금 두 분의 발표는 싸움이 끝난 뒤 누가 먼저 때렸느냐인데, 남의 집에서 싸운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러일전쟁은 중국 랴오닝 지방이 주요 전장이었는데, 당시 무고한 중국인들이 물적·정신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당시 제물포라고 불리는 항구도시 인천도 열강들이 제멋대로 드나들었던 평화를 운운할 수 없는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1871년,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교훈'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커크 라르센 미국 브리검영대 역사학과 교수는 신미양요에 대한 한미 간 서로 다른 인식 차를 소개했다.

미국은 이를 '로우-로저스 원정'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F.로우 주청 전권공사와 J.로저스 아시아 함대 사령관이 평화로운 협상을 위해 조선을 갔다가 경고 없이 당한 발포에 대응한 사건이라고 본다.

반면, 한국은 제국주의 열강에 처절하게 맞서 싸운 영웅적 저항으로 인식한다.

커크 라르센은 "한국의 역사책, 드라마를 보더라도 미국이 막대한 타격을 입고 후퇴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사실 미국은 3개의 요새를 함락하고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영국의 역사학자 크리스 피어스는 '만주의 조선 침략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만주족과 조선의 무기 차이에 대해 분석했다.

우경섭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주제발표 '병자호란의 기억과 학산서원'에서 북벌의 배경 속에서 탄생한 학산서원의 기원을 살펴봤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