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열기 전 생계 어려워 다양한 일 체험
돈의 가치 다시 느껴 저렴한 가격 판매
많은 사람에 소장 기회 제공하고 싶어
구매자·작가 소통 공간 많아지길 바라
보통의 일상 속에 미술은 저 먼 곳에 있다. 쉬는 날 미술관을 찾아가 작품을 관람하는 일은 아직 보편적인 여가생활은 아니다.
더구나 마음을 뺏는 작품을 발견했더라도 '구매한다'는 생각을 하는 건 쉽지 않다.
각종 뉴스를 통해 접하는 미술품 구매는 일반인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수준의 가격이고, 자연스럽게 그림을 사는 일은 특정 계층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양주 송추계곡에 있는 서양화가 도마(본명 김경훈) 작가가 아내 이완경씨와 운영하는 '그림가게 뚜'는 그 편견을 깨고자 시작했다.
그림가게라 이름을 붙인 것도 편하게 들러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면 살 수도 있는 문화공간인 것을 전하고 싶었다.
이 곳의 그림은 모두 작가가 직접 그린 창작 작품이다. 그리고 가격은 '9만원'이다. 더 저렴한 그림도 많다. 파격을 넘어서 충격이다. 작가 스스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는 지난 2년여 간 겪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과거에 주로 자동차 그림만 그렸어요. 그 작품들은 상당히 고가였죠. 점점 생활이 어려워졌고, 지난 2년간 제일 힘들었던 시기여서 생계를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산을 돌아다니며 잣을 주워서 채우는 일도 했는데, 정말 하루종일 주워도 한 포대 채우는 게 힘들었어요. 그렇게 한 포대 채우면 9만원을 주더라구요. 그때 생각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힘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왜 우리는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저 높은 곳에만 있을까."
그가 그림가게를 연 것도, 가격을 9만원 이상 높이지 않은 것도 단순히 싸다, 비싸다는 돈의 액면으로 이야기하는 미술계를 벗어나고 싶었다.
'어떤' 9만원이냐가 중요했다. 누군가는 땀흘려 번 9만원을 미술작품을 소장하는 데 썼다는 것은 9억, 90억 못지 않은 가치라는 걸 깨달았다.
"돈의 가치를 새롭게 느꼈어요. 그동안 제가 그림을 통해 꿈꿨던 돈이라는 게 쓸데없이 많았구나 생각했어요. 힘든 일을 겪고 나니 그림으로 9만원만 꾸준히 벌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가격을 9만원 이상 높이지 않아요. 10만 원 이상이면 부담스럽기도 하고 초심도 잃을까봐요."
그림가게를 운영하면서 그는 더 그림이 잘 그려졌다. 많은 이들이 직접 그림을 감상하고 꽤 오랜 시간 고민한 후 그림을 구입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아서다.
그림을 접하는 과정이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친근하게 접하고 나면, 그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느 날 정리를 하다가 그림 하나를 버린 적이 있는데, 그걸 인근 식당 주인이 주워 벽에 걸어놨어요. 우연히 식당에 들렀다 보고 식당 주인에게 이 그림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림을 왜 걸었냐고 하니까 자신은 평생 동안 그림을 사본 적도 없고, 걸어본 적도 없지만 그림을 보는 순간 좀 걸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대요. 순간 머리가 띵 했어요.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됐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 미술계에 반기를 드는 방식이기에 어려움도 있다. 저렴한 가격에 그림을 판매하니 주변에서 '왜 스스로 가치를 낮추냐'는 말들이 들려오고 질타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런 공간이 지역마다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림가게 뚜가 있는 양주부터 바꾸기로 했다. 작가들이 이곳 양주로 와서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바뀌어 나가는 방법을 여러 방면에서 고민하고 있다.
"미술을 투자 개념으로 여기는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친구들은 그림 그 자체를 좋아해요. 꼭 유명한 작가여야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통하는 것이 있으면 어떤 전시든 즐겁게 찾아가더라구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사고 싶지만 너무 비싸니 프린트된 종이를 구매해요. 이 곳에 젊은 친구들도 꽤 찾아와요. 원작을 9만원에 사고서 행복해합니다. 원작에서만 느껴지는 작가의 숨결과 감정이 있거든요. 우리 미술계가 오래도록 사랑받기 위해서는 이걸 알아야 해요."
아마도 그의 도전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응원한다. 예술과 일상이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공지영·강효선기자 khs7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