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공기업 고용세습 의혹
갈등서 촉발된 '격분' 법과 제도로 수렴돼야
더이상 먹이 없을때 분노는 정치로 향할것
최근 우리 사회에 분노의 무한 충돌 현상이 뚜렷하다. 이념과 계층과 상관없이 공생하던 공동체가 적대적으로 대치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이념적 진영과 계층 내부에서 분노가 분화하고 확대된다. 이를 자양분 삼아 이념과 계층 간의 오래된 적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상대를 말살하려는 분노의 화염은 더욱 거세진다.
사립유치원 회계비리 사태로 유아교육 공동체가 쑥대밭이 됐다. 학부모들은 정부 지원금으로 명품 핸드백과 성인용품까지 구매했다는 비리 명세서에 몸서리쳤다. 사립유치원을 향한 분노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예전 같으면 유치원 쪽에서 납작 엎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립유치원 측은 오히려 여당과 정부를 향해 분노를 터트린다. 토지와 건물을 투자해 유아교육을 떠 받쳐온 영리사업자의 공적기여는 아랑곳 없이 사립유치원 전부를 비리집단으로 낙인 찍었다며 저항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비리 유치원 한 곳만 폐쇄해도 아이들이 갈 곳이 없는 현실에서 학부모와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분노를 가슴에 품은 채 계속 얼굴을 맞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공기업 고용세습을 둘러싼 분노의 충돌도 심상치 않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이익을 공기업 임원과 노동조합이 챙겼다는 의혹은 특혜 취업 규모가 늘어나는데 비례해 취업준비생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취준생들은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좋은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진보 정부의 선의를 의심하고 있다. 공기업 고용세습을 향한 분노의 본질은 일자리 축소라는 현실적 손실이 아니라 신뢰 붕괴에 따른 배신감이다. 민노총과 청년계층은 진보 진영 기반의 주축이다.
분노는 갈등에서 촉발된다. 갈등이 상식적으로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분노를 낳고, 분노는 배설의 대상을 찾아내 비대해진다. 분노의 배설에 대충은 없다. 배설의 대상을 탐색하는 집요함과 맹목성은 최초의 갈등을 초월하고 또 다른 분노를 증식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정당의 궤멸적 붕괴가 이런 과정을 밟았다.
결국 사회적 분노는 제도와 법으로 수렴돼야 한다. 다양한 층위의 분노는 정당에 수렴돼 국회에서 공적인 분노, 공분(公憤)으로 조절돼야 한다. 상식과 규범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된 공분으로 공동체의 공의와 정의 실현의 동력으로 변주하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 한국 사회의 불행은 바로 이 지점, 정치의 분노 조절 기능이 작동을 멈춘데 있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립유치원 비리에 입다물고 있고, 더불어 민주당은 공기업 고용세습 의혹을 '거짓'이라고 분노한다. 한국 정치는 분노 조절 스위치를 끈 것도 모자라, 상대를 향한 원초적 분노를 사회에 환원해 다시 키우는 분노 배양기가 된지 오래다. 사법부는 폭주하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한 채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제도와 법이 방치한 분노의 화염이 우리 사회를 그라운드 제로 상태로 만들고 있다. 더 이상 먹이가 없을 때 분노는 정치를 향할 것이다. 그 분노가 궤멸상태의 보수 정당을 50년 이상 말살할지, 진보정권의 자충수로 작용할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 정치는 벼랑에 서있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