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
힘 있는 자가 행사하는 '인권유린'
범죄없는 성숙한 사회 만들기위해
서로 배려·존중하는 마음 지녀야
지난 3월 문화체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특별 조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성폭력, 성추행 고발을 접수했습니다. 100일간 진행된 특별 조사는 상당수의 고발 건이 시효가 만료되는 등 가시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성적 측면에서 얼마나 불평등한가에 대한 실상이 제대로 드러났고, 이것이 바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천주교 성직자계도 이번 미투 운동으로 큰 충격을 겪고 내부적으로 쇄신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성 평등에 관한 인식 전환을 체험 중에 있습니다. 특히 교구 소속 사제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닷새간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았습니다. 또한 해당 사제에게는 정직이라는 중징계가 처해졌습니다.
6년 전부터 서울대병원 부설 서울 해바라기센터에서 운영위원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국립양성평등원의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 자격을 이수했고, 나름 준전문가 입장에서 성폭력 사례를 수십 차례 상담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피해자를 대면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되었습니다. '왜 성범죄가 발생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는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본질적으로 성범죄는 권력이 있는 쪽이 권력이 없는 쪽에 행사하는 인권유린입니다. 이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다움을 버리고, 인성보다 동물성에 충실하려는 저급한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범죄입니다. 단지 힘이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없는 노인과 어린이를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권력이 존재하는 어느 조직에서든 성범죄는 일어납니다. 사회에 속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 조직 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조직은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큰 권력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성범죄의 이면에 권력의 횡포가 숨어있다고 볼 때, 이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성범죄가 만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성이 문화를 만들어야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습니다. 동물처럼 힘의 논리에 의해 문화가 만들어지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공포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범죄를 없애려면 우선 인권운동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문'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평등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 때문이다"라고 요약되는 이 선언문은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좋은 문화의 산물입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생활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는 한 성당, 즉 한 조직의 최고책임자입니다. 당연히 막강한 권력이 주어집니다. 더군다나 종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조직구성원인 신도들은 신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돌아보면 신자들의 인권을 무시한 경험이 많습니다. 성당 운영위원회 회의 때 위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지은 적도 여러 번입니다. 종교인과 신도는 구별될 뿐 차별되지 않는 것은 복음의 진리입니다. 이를 잊고 주어진 권력을 남용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쉽게 아내 혹은 남편 그리고 자녀의 인권을 무시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권 의식이 없으면 여러 가지 사고가 발생합니다. 성범죄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성범죄 없는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대상이 누구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