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즐거움 안겨주는 행사
일회성 아닌 지속 연구·발전시켜
'그 책 축제는 가볼만하다' 라는
좋은 평가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전국에서 열리는 책 축제들을 보면 특색 있는 기획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출판사 부스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단순히 책을 전시·판매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지역의 책 축제를 그대로 들어다 다른 곳에 옮겨 놓는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기서 거기인 비슷한 행사들이 많다. 이 와중에 출판사라도 재미를 본다면 다행이겠지만,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아 고스란히 다시 가져온다는 이야기도 많이 전해 듣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제인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책 축제에 대해 아쉬움을 갖다보면 부산 국제영화제 같은 영화 관련 축제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영화제가 있는데, 보통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특별한 장르의 영화를 수집해서 상영한다. 그리고 영화 상영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물론 책을 영화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긴 어렵지만, 영화제의 중심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화 그 자체가 주인이듯 책 축제 또한 책이 주인이 되어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여러 출판사를 불러 모아 책을 전시하거나 책은 빠진 채 체험 행사들로 채워진 행사가 아닌, 지역문화와 어울리고 각자의 특색을 지닌 깊이 있는 책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몇년 전 프랑스에 살면서 책에 관련된 행사에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의 탄생기념식을 하면서 그 작가의 삶에 대한 전시와 함께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생각하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조용하면서 깊이 있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어가 부족하여 이해도가 낮았음에도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느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책 도시 베슈렐(Becherel)의 책 축제 또한 요란한 행사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책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을 만져보고 바라보는 신비로움은 특별한 기억을 심어주었다. 책 만드는 과정을 직접 해보는 체험은 조용하고 진지하고 깊이 몰입되면서 설렘을 듬뿍 안겨주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경험한 책 축제에는 책의 중요한 부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림책 '중요한 사실'(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최재은 그림.최재숙 옮김/보림)에서 그림책 작가는 본질적인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한 장면, 한 장면을 말해주고 있다.
눈은 차갑고, 가볍고,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오고,
눈은 환하게 빛나고, 조그만 별이나 수정처럼 생겼어.
눈은 언제나 차가워. 그리고 눈은 녹아.
하지만 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눈이 하얗다는 거야.
'눈이 하얗다'는 사실처럼 책 축제에서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을 마련하여 한 명 한 명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들고, 그 속에서 책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책과의 만남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에 책 행사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
축제라는 것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설렘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우리는 축제를 기다렸다가 참여한다. 그런데 그 축제들이 일회성 행사로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지 말고 '왜, 이 축제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물음과 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조금씩 발전시켜서 축제 자체가 역사를 갖게 되어 '그 책 축제는 가볼만 하다'는 평가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