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있어서 슬프고 초조하다. 울고 싶고 마음이 아프다." 일본과 조국의 법정을 전전하길 21년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받은 이춘식(94) 옹의 비감한 소회다. 배상소송을 함께 했던 징용피해 동료 3명이, 그것도 2명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승소 법정에서 전해 들었다. 승소의 기쁨보다 상실의 비애가 앞섰을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격언을 이처럼 실감하는 장면이 또 나올지 의문이다.
고 여운택, 신천수 두 강제징용자가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 1997년 12월이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이들을 모욕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전제하에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이들의 최종 상고를 기각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피해자 고 김규식씨와 이 옹과 함께 2005년 2월 조국의 법원을 찾았다. 일본의 배상을 원했다기 보다는 조국의 법원이 강탈당한 강제징용자의 정의를 인정해주길 바랐던 마음이 컸을 것이다.
놀라운 건 대한민국 지방, 고등법원이 일본법원 판결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대법원이 바로잡았다. 2012년 "일본 판결은 우리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신일본제철은 구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며 고법판결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에 고법이 2013년 신일철주금의 1억원 배상책임을 확정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상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시계추는 고법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는 수순만 남겨둔 채 5년간 멈추었다. 대법원의 잘못은 명백하다. 의혹대로 재판거래 탓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세운 역사적 정의를 5년간 묻은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 대가로 정부는 심각한 외교적 후폭풍을 감당하게 됐다. 수상부터 장관까지 일본의 반발은 전면적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거론하며 국제재판소 제소를 거론하고 있다. 대북제재 완화를 놓고 미국과의 갈등설이 나오고, 사드 분쟁 이후 중국과도 어색하다. 북한은 자신들을 향한 남측 정부의 진심을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밥상머리 악담으로 모욕한다. 여기에 한·일 갈등이 추가되는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대법원이 지연한 정의 때문에 우리 운명이 걸린 한반도 외교전선에 대형 악재가 추가됐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