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한다는데 살림 왜 이럴까
부·집값·사교육·일자리 양극화보다
생각의 차이로 우리의 노력·성과가
행복으로 연결 안되는게 최대 걸림돌
'희망의 싹' 틔울 관리인을 응원한다


경제전망대 조승헌2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녀석은 산모롱이를 끼고 도는 개울가에 오롯이 서 있었다. 늦은 오후에 비끼는 햇살, 잎맥을 드러내며 바르르 떠는 잎새, 다홍과 하양이 버무려져 자아내는 산의 윤슬이었다. 이 가을 진짜는 여기에 있는 것을. 너를 볼 수 있어, 모욕도 굴종도 절망의 나락에 떨어짐도 견딜만한 가치가 있음을. 나의 인생리스트가 하나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가을 잔치는 끝내고 겨울맞이를 해야 할 참이다. 김장하고 연탄과 쌀가마를 광에 그득 쟁이면 마음이 푸근하고 겨울을 즐길 거리를 궁리하던 그런 시절. 어릴 적 우리나 부모님이 생생하게 겪은 그때는, 집값도 저출산도 비정규직도 세상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60환갑을 '산 제사'라 하였으니 고령화는 부러움과 축복이었다. 우리의 올겨울은 따뜻할까? 세상 사위를 둘러봐도 온기를 찾기 힘들다는 데 동의를 한다면 여러분은 통계적으로 다수의견자가 되는 거다. 일자리 부진이란 말은 우리에게 인이 박혔고, 올해 경제성장률은 그나마 2.7%만 돼도 다행이라 할 판이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는 춥고 배고픈 겨울이다.

그런데 그 겨울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지표와 정황을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생각해 보면 꽤 오래전부터, 최소한 정권이 바뀌기 이전부터 지금 겨울이 그 겨울이었다는 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오래전 뿌려진 불량 씨앗이 지금 돋아나거나, 잡초가 생명력이 강하듯 스러지지 않고 여전히 버티며 영양분을 독식하고 있는 형세다. 그런데도 중요한 건, 지금 한국사회의 '관리인'이 누구냐 하는 거다. 과거와 현재, 이편과 저편 모든 걸 떠안는 것이 '관리인'의 시대적 소명이자 숙명이다. 잡초, 독버섯, 부실한 채마는 뽑아내고 씨를 뿌리고 키워서, 관리의 소임을 맡긴 국민을 제대로 먹이고 입혀야 할 법이다. '관리인'이 이 일을 제때 제 장소에 제대로 했는지는 엄정하게 따져야 할 것이다. 이제 그럴만한 시간이 흘렀으니.

예부터 민심이 천심이라 했다. 민심은 지금 겨울이다. 싸늘하다. 하지만 '관리인'은 간파해야 한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다는, 계속 겨울이면 마음이 뒤집힐 것만 같다는 간절함과 애절함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음을. 우리가 봄에 상춘곡을 부를 수 있을까. 이리하는 '관리인'이라면 미래지향적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진솔하라. 약점과 어려움을 드러내라. 앙상함이 힘이다.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배한봉 시 '육탁' 중에서). 홋홋하라. 쓸쓸함을 두려워 마라. 알아주지 않아 미쳐버릴 정도로 분통이 터지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고, 강가에서는 눈도 마주치지 말라'(황인숙 시 '강' 편집). 그리고 털어내라. 세월은 비정하다.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니 일단 몸을 가볍게 하여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 증오와 챙김도 내려놓아라. 낙엽은 끝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씨 내림의 시작이다. 그렇게 겨울을 정진하면 옛것이 스러지고 새것의 본색이 드러날 것.

경제는 성장한다는데, 삼성전자는 분기마다 수십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데 내 살림살이 우리 마음은 왜 따라서 좋아지지 않는 것일까? 부의 양극화, 집값의 양극화, 사교육의 양극화, 일자리의 양극화보다 생각의 양극화가 우리의 노력과 성과가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게 하는 최대의 걸림돌이 아닐까. 이대로 가면 드디어 봄이 왔다 해도 한쪽에선 여전히 겨울이라 할 거라는 건, 진실이 비참할 땐 거짓이 생존이라는 서글픈 현실에 매여서인 듯싶다. 일상과 사람으로부터 희망이 없을 때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하나? 세상살이가 힘들 때 동료, 이웃, 친지 그리고 혹자는 지지하는 '나라'를 바라보았을 우리, 얼마나 위로를 받았고 힘을 얻었을까. 약한 모습 보이니 '영양가'가 없다 하여 내침을 당하거나 주변이 더욱더 힘들게 한 적은 없었는지. 붉은 가을을 보내고 하얀 겨울 문턱에 서서 생각한다. 새봄이 온전히 너와 나의 희망이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진정 이 겨울은 추울 수밖에 없을까. 동토에서 희망의 싹을 틔울 '관리인'을 응원하고 고대한다.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