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시리즈가 시작됐으나 야구 팬의 의식은 여전히 지난 2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 멈춰 서 있다. 명승부를 넘어 한편의 스펙터클한 영화였던 탓이다. 평생 이런 야구를 본 적이 없었다. 야구라고 다 야구가 아니었다. 정규시즌 야구와 포스트 시즌 야구는 분명히 달랐다. 전국 TV 시청률이 무려 8.9%를 기록했다. 야구 팬이 아니어도 그날의 야구를 보았다면 채널을 돌리는데 주저했을 것이다.
연장 10회 말, SK의 공격. 첫 타자는 정규시즌에서 1군과 2군을 오갔던 베테랑 김강민. 김강민은 투 스트라이크 상태에서 4구를 받아쳐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뜨려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을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진 예고편. 이어 타석에 들어선 한동민이 때린 백구(白球)가 가을 밤하늘을 가르며 백스크린 앞에 떨어졌다. 끝내기 홈런. 환호와 탄성이 일시에 폭발했다. 지난 1994년 태평양 돌핀스가 코리안시리즈 진출을 다투는 한화전에서 연장 10회 초 김경기가 날린 홈런도 여기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 어떤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으로 각본을 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구는 그 경기에서 인천야구의 본질을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의 프로야구 역사는 짧다. 그러나 인천 야구 역사는 길다. 인천은 한국 야구의 본산이다. 5·60년대 인천은 구도(球都)였다. 부산은 비할 바가 못 됐다. 인천고와 동산고를 앞세워 최대 부흥기를 맞았다. 적수가 없었다. 야구는 인천 토박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천에 들어와 살던 실향민들에게도 정신적 위안을 주었다. 야구는 인천사람에게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고된 삶을 잊게 해주는 위안거리였다. '인천사람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었다'. 70년대 서울과 경북 부산 광주 지역 고교 야구팀이 창단되면서 선수부족으로 비록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인천 야구'는 늘 터질 날만 기다리는 거대한 휴화산이었다.
인천이 술렁이고 있다. 5년 만에 체험하는 코리안시리즈 때문이다. 1차전 가을의 사나이 박정권의 불같은 타격으로 역대 최강이라는 두산을 7대3으로 격파했다. 2차전은 비록 졌지만, 적지에서의 1승은 큰 수확이다. 1승 1패를 기록하고 오늘부터 두산을 홈으로 불러들여 3연전을 펼친다. 가을야구는 실책이 승부를 가른다. 촘촘한 수비, 불같은 방망이, 민첩한 주루를 기대한다. 반드시 우승이 능사는 아니다. 우린 이미 인천 야구의 '부활'을 보았으니 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