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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KBS '동물의 왕국'의 열혈 시청자였다. 이 프로를 보기 위해 회의를 일찍 끝낸 경우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못지 않았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동물의 왕국'을 자주 얘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광팬이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프로를 즐겨 보는 이유를 "동물은 배신을 안 하니까요" 라고 말한 게 당시 화제가 됐다.

KBS 최장수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이 첫 전파를 탄 것은 1969년이었다. BBC, NGC, NHK 등의 수입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우리말을 더빙해 방영했다. 종영과 부활을 수없이 반복했다. 2004년 가을 개편에 '동물의 왕국'을 KBS1로 부활시키며 내세운 것이 '공영성 강화'였다. 그 후 '동물의 왕국'은 시청률은 낮지만 KBS가 공영임을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익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됐다.

KBS가 이번 가을 개편에 장수프로그램을 대거 폐지했다. 그나마 '동물의 왕국'은 용케 살아남았다. 하지만 2004년 시작해 중장년층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콘서트 7080', 성우 박기량의 코믹 해설이 일품이던 'VJ 특공대'도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젊은 방송'을 만든다는 게 폐지 이유였다.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특히 70, 80년대 20대를 보낸 세대를 겨냥한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 '콘서트 7080' 폐지에 시청자 실망이 크다. '콘서트 7080'은 당시의 인기곡을 오리지널 가수가 직접 출연해 그 시절의 추억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시청률은 낮지만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소개되는 노래마다 우리 시대 추억이 알알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공개방송 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진행자 배철수도 몰랐을 정도로 프로그램 폐지는 전격적이었다.

올 KBS 예산은 총 1조5천152억원으로 이중 수신료수입이 6천542억원을 차지한다. 모바일로 TV를 시청하는 20대보다 시청료의 상당 부분을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장년층의 유일한 위안거리 '콘서트 7080'을 폐지 시킨 KBS의 용기가 놀랍다. 월 2천500원의 KBS 수신료를 돌려 달라는 민원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2016년 1만5천746건에서 2017년 2만246건에 이어 올 9월 말 현재 2만5천964건으로 크게 늘었다. KBS가 요즘 왜 이러는지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