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간 정쟁과 날세운 공방 '여전'
정책·현안에 대해 유치한 질문
호통·삿대질 등 '망신주기' 일관
피감기관 무성의한 답변도 '눈살'
허용범위 정할 매뉴얼 마련 시급

수요광장 김정순2
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국정감사는 많은 숙제를 남겼다. 이번 국감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1년여 문재인정부는 국가 체질의 기본기를 다지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진지한 점검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정책들이 어디를 향하고, 또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국민적 관심사가 높았던 것이다. '포용국가'를 지향하는 문재인정부의 협치와 통합에 거는 국민적 기대도 컸다.

하지만 이번 국감 현장에서 보인 정치인들의 모습은 실망을 감출 수 없게 했다. 국격이 높아지고 시대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국감장에서는 실력도, 의지도, 품격도, 성의도 없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바뀌는데 국감장 모습은 이토록 안 바뀌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야 간 정쟁과 날선 공방이 여느 때보다 유독 많았다. 일단 상대 당을 비방하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았다. 정작 날카로워야 할 피감기관의 정책과 현안에 대해선 맥 빠지는 질의가 많았다. 국감이란 행정부에서 하는 일을 국민의 시각에서 점검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바로 잡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국민 기대와는 다르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이 국감장에서 노출됐다. 의원들의 비합리적이고 유치한 질문, 왜곡되고 과장된 공격은 오로지 '피감자 망신주기'가 목적인 듯 보였다.

그나마 2년 연속 '국감 홈런'을 날린 박용진 의원(민주당), 서울시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한 유민봉 의원(한국당) 등 몇몇 유능한 공격수의 활약 덕분에 체증이 조금이나마 풀렸을 뿐이다.

물론 철저하게 준비된 피감 기관장들은 의원들의 공격에도 아랑곳 않고 진솔하게 답변하거나 노련하게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책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좋은 평가를 받은 기관도 눈에 띄었다. 이와는 다르게 날카로운 질문이든 무딘 질문이든 '검토하겠다'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만 반복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피감기관도 있었다.

국감장에서 저급한 고성이 오가고 상스러운 삿대질이 난무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바뀔 조짐이 안 보인다. 의원들이 피감기관을 죄인 취급하듯 하며 권위적인 태도로 호통치고, 무안 주고, 버럭 화내는 모습은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렵다.

의원들은 피감기관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쏟아놓고, 피감기관이 답을 하려 들면 '됐어요'라고 하면서 말을 잘라버린다. '방송 분량 욕심' 때문인지 보좌진이 준비해 올린 원고를 큰소리로 계속 읽어 내려간다. 애당초 피감기관에 답변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바쁜 시간 쪼개 성실하게 준비한 증인이나 참고인들의 답변은 종종 이렇게 무시됐다. 이런 모습을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올해 국감에선 신선한 풍경도 눈길을 끌었다. '책(冊)' 형태의 정책자료집들이 주목을 끌었다. 국감 질의시간은 깊이 있게 정책을 논의하기엔 시간적 제한이 있는데 정책 제안을 통해 피감기관의 개선을 이끌기 위해선 정책자료집을 통한 소통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국감장 풍경이 발전적으로 변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의원들의 날카로운 공격과 피감기관의 성실한 수비 외에도 국감을 둘러싼 또 다른 중요한 축은 언론의 사명과 역할이다. 잘 준비된 의원의 수준 높은 질의와 무성의한 의원의 질의 수준을 구체적인 보도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피감기관장의 능력과 노력을 국민들이 잘 분별할 수 있도록 언론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언론보도는 확실한 검증을 바탕으로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국감을 위한 시스템 개선과 해서는 안 되는 구체적 매뉴얼 마련도 시급하다. 분명한 문제제기 대신에 막말과 호통으로 망신주기식 국감은 더 이상 안 된다. 이런 풍경은 사라져야 한다. 정책 검증과 현안 문제로 국민적 관심사를 끌어내 국민들에게 흥미를 일깨워야 한다. 국감 진행과 관련해 어느 수준에서 허용 범위를 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