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성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이 더 큰 문제
권력·이익 독점세력 특권 더욱강화
이 구조 깨지 못하면 파행은 지속
정권이 안 바꾸면 시민이 바꿔야

2018111801001196400056821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촛불이 꺼진 뒤 우리 사회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급속히 빨려들고 있다. 촛불을 딛고 정권탈환에 성공한 이 정부는 미시적 정치공학의 논리에 빠져 그들의 정치권력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듯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20년은 더 집권할 수 있을 듯이 말하지만, 그들이 결코 촛불을 들었던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 있음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다음 총선까지 자신의 정치적 독점이 이어지리라 생각하지만, 그야말로 커다란 착각이다. 수구 세력의 퇴행적 행보가 민주당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배경이 된다면 그야말로 너무도 한심하지 않은가. 여전한 수구 언론과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세력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적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시민이 촛불을 든 것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소하고, 지대를 독점한 이들의 배타적 권력을 보장하는 왜곡된 사회 구조를 바꾸라는 외침이었지만, 아무런 울림이 없는 것은 역시 이 정권도 그런 구조와 체제에서 이익을 얻기 때문이 아니란 말인가.

담대하게 구조적 개혁에 집중해야 할 때, 그들은 권력의 허상에 빠져 자신이 지닌 특권에 만족하고 있다. 촛불을 든 시민은 분명히 이 시대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경제 민주화와 공정을 원하는 이들에게 공허한 성장 담론으로 대답하는 정부, 입시지옥을 벗어나길 원하는 데 정시, 수시 비중 차이로 대답하는 교육부, 학문의 죽음을 초래하는 재정지원과 평가정책에 기본역량진단 사업으로 대답하는 정부, 사법 농단에 침묵하고 배타적 특권을 옹호하는 정부가 어떻게 시대정신을 읽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촛불의 동력을 다만 정치권력 체제 변화로만 받아들인 그들, 공공성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는 정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촛불이 꺼진 것은 협치 부족 때문이거나 수구적 야당의 훼방 때문이 아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기업 회계 부정과 아시아나 항공과 같은 재벌의 비인격적 행위에 정당하게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국회 때문인가. 진정 삶을 드높일 수 있는 개혁, 불공정하게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그 불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분열과 파행으로 이끌어갈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이 정부는 시대적 요구를 읽지 못하고 다만 이를 경제성장이란 말로 대신하려 한다. 설사 사람들이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성장으로 해소되기를 기대할지언정, 불평등한 구조개혁 없는 성장은 단지 특권층의 이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책 집행자만이 모른단 말인가. 우리 경제는 성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이 더 큰 문제임을 익히 알지 않는가. 한국사회의 권력과 이익을 독점한 집단이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양산하고 특권을 강화하고 있다. 이 구조를 해소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파행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경제적 안정은 너무도 필요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자유의 터전임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 안정 없이 어떠한 자유도 어려움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어떤 경제적 안정 위에서 자유가 가능할까. 어떤 공정함과 평등이, 자유와 인권이 얼마 정도의 경제적 풍요 위에서 지켜질 수 있을까. 지금처럼 특권계층이 저지르는 반사회적이며 공공성을 해치는 가운데 가능한 성장을 용납한다면 우리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위험에 처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그때 보편적 경제 성장도 불가능하게 된다. 지금은 구조개혁을 통해 총체적인 경제 질서를 새롭게 설정할 때이다. 그럼에도 다만 수치로서의 성장에만 매달려 있다. 촛불은 당면한 전쟁 위험은 껐지만 다른 아무것도 끄지 못했다. 그 사이 한유총과 같은 사익집단이 시나브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들이 벌리는 사익을 향한 좀비 행렬이 허용되는 것은 잘못된 경제성장의 욕망 때문이다. 지금 이 욕망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다시금 부활한 좀비세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정권이 바꾸려 하지 않으면 시민이 바꿔야 한다. 우리가 공정과 평등을 말해야 한다. 그 길은 우리 욕망을 다시금 살펴보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