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 힐만. 이젠 그에 대한 호칭을 SK 와이번스 '전' 감독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인천을 떠났으니까. 2년간의 짧은 감독 생활, 힐만은 SK 와이번스에 8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기고 떠났다. 하지만 우승 트로피만 남긴 게 아니다. 2년 동안 힐만은 인천시민과 한국 야구 팬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남겼다. 힐만과의 이별이 슬프지 않은 이유다.
힐만은 인천 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다. 오히려 우승은 덤이었을 정도다.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팬들에게 음식을 직접 나눠주기도 했고, 의리의 배우 김보성 분장으로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과 소통했다. 일부러 머리를 길러 소아암으로 고통을 받는 어린이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해 팬들을 울리기도 했다. 특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25일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어린이의 학교를 찾아가 격려했다. 그 어린이가 한국 야구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 PO 5차전 시구를 맡았던 김진욱 군이다.
지난 16일 힐만 감독의 이임식장은 활기에 넘쳤다. '이별의 슬픔'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최항과 정의윤을 불러내 "의리! 의리! 의리!"도 외치는가 하면 선수들을 향해 "오늘부터는 동료가 아닌 우린 친구"라고 말했다. 힐만은 그런 감독이었다. 한·미·일·베네수엘라에서 감독 생활을 했던 힐만은 2년 전 SK 와이번스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야구하는 것보다 선수들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가가는 만큼, 선수들이 오는 것을 느꼈다."
힐만은 이렇게 특유의 '소통 리더십'으로 선수들과 친해졌다. 상대 선발투수를 분석해 타순을 정하는 '데이터 야구' 로 SK를 홈런 군단으로 만들었다. 포스트 시즌에서 SK는 한국프로야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화끈한 홈런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넥센과의 포스트 시즌 5차전과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투아웃에서 나온 최정의 동점 홈런, 13회 한동민의 결승 홈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힐만은 겸손한 감독이었다. 외국인으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음에도 "나는 50점이다. 우승은 내가 한 게 아니다. SK의 것이다. 구단 모든 이의 도움으로 좋은 결과가 있었다. 감독으로선 좋은 판단을 한 적도 있고, 나쁜 판단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힐만은 솔직한, 그런 감독이었다. 그가 인천을 떠났다. 벌써 그의 호쾌한 야구가 그립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