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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매년 이맘때면 인천 섬에서 나는 자잘한 굴을 맛보는 게 재미다. 통영 굴처럼 알이 크지는 않지만 초장 대신 양념간장에 비벼 숟가락으로 슥 떠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인천 옹진군 섬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찬바람이 불 무렵부터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굴을 따 인천 연안부두로 보내주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맛이다.

8년 전 이맘때도 그랬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서해 최북단 연평도 섬 주민들은 물이 빠진 갯벌에 옹기종기 모여 굴을 따고 있었다. 북한의 포탄이 내 집 마당에 떨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굴 한 바구니 팔아서 손주들 용돈이나 챙겨줘야지 하는 할머니도 있었을 것이고, 육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보내줄 생각에 열심히 굴을 캐던 어머니도 있었을 것이다. 마을은 북한이 쏜 포탄으로 쑥대밭이 됐다. 군부대 막사 공사를 하던 민간인 2명과 해병대 장병 2명이 숨졌다. 민가에 포탄이 떨어졌음에도 인명피해 하나 없던 이유는 주민들이 모두 굴을 따러 바다에 나가 집을 비웠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연평도 주민들의 목숨은 굴이 살려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8년 뒤 연평도에 포탄을 날렸던 북한의 해안포 진지는 굳게 문을 닫았다. 4월 판문점선언과 10월 평양공동선언에 따른 후속 조치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20일 연평도를 찾아 군부대를 둘러보고 북한의 해안포 폐쇄를 확인한 뒤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해찬 대표는 "이제 이 지역이 평화수역이 되면 공포가 사라지고 주민들이 안심하고 어업을 할 수 있는 좋은 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년 11월 23일이면 연평도 주민들에게 의무감처럼 던지는 질문이 있다. '여전히 불안하시냐'고. 그때마다 주민은 "여기는 원래 평온한데 언론이나 주변에서 난리"라고들 답했다. 대신 "이럴 때만 관심 갖지 말고 평소에나 관심 가져달라"고 한소리 듣곤 한다. 내년 11월 23일에는 질문이 바뀌었으면 한다. '살기 좋아지셨냐'고. 평화의 시대라면 이제 연평도는 바뀌어야 한다. 평화로운 곳에는 굳이 평화를 묻지 않는다. 군사규제에 묶였던 야간조업 금지를 풀어야 하고, 어장도 더 넓혀야 한다. 여객선도 제 시각마다 다닐 수 있도록 항만시설을 개선해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김민재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