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분 적립식… 세대간의 계약
저출산 극복·경제 성장만이 해답
후손들 現세대보다 풍요롭게 살아
고갈 시점, 일희일비할 필요 없어

대부분 국가에서 부과식을 택하고 있으므로 공적연금을 세대 간 계약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부과식으로 전환하면 되므로 연금 고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이번에 사회수석으로 임명된 김연명 교수가 이러한 주장의 선봉장이다. 사실 선진국들이 이런 경로를 밟아 왔다. 그러나 반론을 펴는 사람들도 많다. 선진국은 인구구조가 안정적이지만, 한국은 출산율이 너무 낮고 고령화 속도가 빨라서 젊은 세대가 은퇴 세대를 부양하기는 무리라고 한다. 미래 세대에 너무 큰 짐을 지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국민연금 재정전망에서 합계출산율은 1.24, 경제성장률은 1.1%로 가정했다. 합계출산율이 약간 반등할 것으로 가정했는데 올해 합계출산율은 1.0으로 추정된다.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진다. 하지만 향후 수십 년 또는 100년 동안 출산율이 어떻게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유럽에는 프랑스와 북유럽 국가들처럼 출산율이 낮아지다 반등해서 비교적 안정적인 나라들이 많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계속 1.0 수준에 머무르면 대략 100년 후에 인구가 5분의1로 준다. 사실상 나라가 존속하기 힘들다. 국민연금 고갈이 아니라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1970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4.53이었다. 수십 년 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불가능하지만 수십 년 후 2.0에 근접할 수도 있다.
선진국이 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져서 2% 전후가 된다. 장기전망에서 1% 포인트 차이는 크다. 복리의 마술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1인당 소득이 매년 1% 성장하면 100년 후 소득이 2.7배에 그치지만, 2% 성장하면 7.2배가 된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아니다. 미래에 일하는 세대가 은퇴 세대를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느냐가 관건이다. 100년 전에는 거의 모든 국민이 농업에 매달려야 근근이 먹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농수산업은 생산액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어도 경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대에 그친다. 그만큼 경제성장은 큰 변화를 가져온다. 경제성장률은 개인이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가 측정 대상이므로 인구감소는 경제성장률 감소 요인이다. 저출산 추세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경제성장을 하는 것이 국민연금 문제를 해결하는 왕도다.
그리고 현행 헌법이 유지된다면 2057년까지는 여덟 번, 향후 100년 동안 스무 번 정권이 바뀐다. 지금 국민연금 제도를 손본다고 해서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세대를 위해서 미래 세대에 너무 큰 짐을 지워도 안 되지만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후손들 일은 후손들이 알아서 하게 되어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제일 부유한 국가다. 인구 5천만 명 이상에 1인당 GDP가 3만 달러가 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에 7개국밖에 없다. 이런 나라를 물려받고 어느 정도 키워서 넘겨주는 것도 미래 세대에게 큰 혜택을 넘겨주는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후손들은 현세대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에 대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