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 '심청상' 너머 보이는 북녘땅
우리나라의 대표적 한글 고전소설인 효녀 심청전의 무대로 알려진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진촌리에 세워진 심청각의 심청 상(像) 뒤로 북한 황해도 땅이 보이고 있다.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고려시대 황해도 일대 이야기 '정설'
연봉바위·연화리 등 백령도에 흔적
분단 이후 북한도 여러가지로 각색
2005년 합작 '애니' 남북 동시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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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는 남한의 최북단 섬 백령도와 북한의 장산곶 사이 해역 어딘가에 위치했다고 전해진다.

인당수 너머 멀리 장산곶이 바라다보이는 백령도 진촌리의 심청각은 심청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는데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 중에는 실향민들이 많다.

황해도 장산곶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망향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심청을 매개로 한 남북교류 사업이 기대된다.

심청전의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고려시대 황해도와 부속 섬 일대에서 시작한 이야기라는 게 정설이다. 우리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심청가는 "옛날옛적 황주땅 도화동에 한 소경이 살았는데, 성은 심가요, 이름은 학규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고려 초기에는 예성강 입구에서 옹진 앞바다를 돌아 대동강 입구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뱃길이 자주 이용됐다. 심청이 물에 빠진 인당수는 해상교역로 가운데 가장 물살이 센 곳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가 유력하다.

실제로 조선 광해군 12년(1620년) 백령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의병장 이대기는 '백령도지'에서 "장산곶의 벼랑과 백령도의 벼랑이 서로 끼고 하나의 골짜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두 물이 서로 부딪혀 소용돌이친다. 또 밀물과 썰물 때에는 나가고 들어오면서 서로 부딪치니 놀란 파도와 성난 물결이 하늘로 치솟아 험하고 사나움을 이루니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다"고 썼다.

백령도에는 심청 전설과 관련한 지명이 많다. 백령도 남포리 물범의 휴식처 '연봉바위'는 심청이 연꽃을 타고 올라와 조류를 따라 흐르다가 걸려 살아난 곳이다. 백령면 연화리는 말 그대로 연꽃마을인데, 이도 심청이 환생한 장소다. 이밖에 뺑덕어미가 살던 곳이 백령도 장촌리라는 설도 전해 내려온다.

심청 이야기는 황해도와 백령도 일대에 실제 있었던 '인신공양(人身供養)' 풍습과 지형, 해류의 흐름, 민속을 바탕으로 구성된 전설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분단 이후 북한에서도 심청과 관련한 이야기가 여러 가지 색깔로 나왔다. 심학규 중심의 이야기는 걷어내고 심청 중심의 희생정신을 통해 인민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부각하거나 심청을 공양미 300석에 데려가려고 하는 중국 남경 상인에 저항하는 도화동 주민들의 모습을 그려 인민들의 마을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심청전은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의 남북 교류 물꼬를 텄던 소재이기도 해서 남북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더 주목받고 있다. 2005년 8월 광복 60년을 맞아 남북합작 애니메이션 '왕후심청'이 남북 동시 개봉하기도 했다.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서울로 피란했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재미교포 넬슨 신이 북한의 조선 4·26 아동영화촬영소와 함께 제작한 극장용 만화영화다. 기획은 남쪽에서, 그림과 채색은 북에서 각각 맡았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