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노사분규 증가 예상도 '50%' 넘어
청와대의 '현실과 동떨어진' 잇단 발언들
내부 의사결정 과정 심각한 문제있다는 의미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세계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연맹 국가 칠 왕국을 무대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가문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그렸다. 명대사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는 왕국의 북부를 다스렸던 주인공 스타크 가문의 가훈이기도 하지만, 왕권 다툼을 하는 가문 모두에게 북쪽 방벽 너머 '죽음과 겨울을 몰고 오는 백귀(白鬼)'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마치 우리 인류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들린다.
오바마는 언젠가 "책과 드라마를 통해 현실 정치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드라마 시청이 단지 '시간 때우기 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오바마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워싱턴 정가의 이면을, '왕좌의 게임'을 통해 국가 간 패권 다툼을 넘어서 인간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를 배웠다. 요즘 드라마가 얼마나 현실에 근접하는지 지난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던 러시아 '댓글 공장' 요원들이 '하우스 오브 카드'로 미국 정치를 배웠다 해서 화제가 됐다.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드라마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왕좌의 게임'처럼 실제 '겨울이 오고 있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정치, 사회, 남북문제는 제쳐 두고라도 우선 경제만이라도 보자. 생산, 투자, 소비 등 핵심 경기지표들이 일제히 내림세를 보이면서 앞날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의 경제상황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이른바 한국 경제위기의 '10년 주기설'을 지적하고 있을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외 경제 전문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2%대 성장률이 굳어지는 추세적 경기하강에 진입했다는 경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후유증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경제 상황이 앞으로 1년 동안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53%)이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16%)보다 훨씬 높았다. 앞으로 1년간 실업자가 늘고 노사분쟁이 증가할 것이라는 견해가 50%를 넘었다.
문제는 청와대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는 생산이 다시 증가하고, 조선 분야도 세계 1위를 탈환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리의 자동차업계가 벼랑 끝 위기 상황인데도 이런 발언이 나와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에도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며 현실과 다른 발언을 했다. 또한 최근 한 세미나에서 청와대 비서관은 "위기라고 하면서 개혁의 싹을 미리 자르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발언으로 참석자들을 당황케 했다. 이는 청와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다 1997년 IMF 한 달 전까지 "우리 경제는 괜찮다"고 말한 김영삼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요즘 유난히 드라마를 보며 현실을 인식한다는 오바마가 생각 나는것도 그런 이유다. 굳이 '왕좌의 게임' 대사를 다시 들추지 않더라도 모든 지표를 보면 진짜 겨울이 오고 있다. '왕좌의 게임' 결말을 모르듯, 얼마나 혹독하고 추운 겨울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데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게 더 무섭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