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발표된 두 나라의 국민투표 결과가 화제다. 대만은 지난 24일 실시된 탈원전 폐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투표자의 59.49%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지에 찬성했다. 이로써 2025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폐쇄한다는 차이잉원 총통의 '원전 없는 나라' 공약은 없던 일이 됐다. 지난해 발생한 국가적 블랙아웃(대정전) 사태가 총통의 꿈을 꺾었다. 그 불똥이 문재인 정부에 튀었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롤모델을 잃었고, 탈원전 반대 세력은 뜻밖의 호재에 입이 열렸다.
25일 스위스 국민투표에서는 소의 뿔을 뽑지 않고 그대로 기르는 농가에 보조금을 주자는 '가축 존엄성 유지' 법안이 거부됐다. 국제법보다 스위스법을 우선하자는 관련 법안도 마찬가지. 반면에 보험사기 의심 환자의 사생활을 감시하자는 법안은 승인됐다. 소 뿔 제거·국제법과 국내법의 우선순위·나이롱 환자 감시라는 이질적이고 경중이 달라 보이는 안건을 국민투표에서 똑같은 무게로 다루는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정수(精髓), 이를 견학하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다.
대만과 스위스는 헌법과 법률로 국민투표 발의 조건을 쉽게 해 직접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대만은 총통선거 유권자수의 0.01%의 서명을 얻은 뒤 다시 선거 유권자수의 1.5%의 서명을 받은 안건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이번 국민투표에는 10개의 안건이 올랐다. 스위스는 헌법개정 제안은 유권자 10만명, 법안은 유권자 5만명의 요구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올해에만 4번의 국민투표로 10개의 법안중 4건을 승인했다. 국민에게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기본소득법이 국민투표로 거부된 건 2016년의 일이다.
물론 직접민주주의가 만능은 아니다. 스위스와 대만의 정치는 천양지차고, 대부분의 선진국이 대의제도로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나라마다 정치를 구성하는 전통과 환경이 달라서다. 하지만 입만 열면 국민 여론을 앞세우는 한국정치에서 국민투표 발의권을 대통령에게만 한정하고 있으니 생각해 볼 문제다. 대신 국민과 소통하는 직접민주주의를 한답시고 청와대 수석부터 주요 정치인들이 SNS 정치에 열을 올리지만 아전인수에 취한 패거리의 나르시시즘일 뿐이다. 국민의사 수렴제도만 놓고 보면 이제 대만이 부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