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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덕 드라마 사의찬미. 사진은 한소진 작가의 장편소설.'선덕여왕', '정의공주' 등 역사 속 여성들을 소설로 조명해온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성악가 윤심덕(1897∼1926)의 삶을 소설로 썼다. /연합뉴스
 

SBS TV 시네마 '사의 찬미'가 첫 방송을 한 가운데, 주인공 윤심덕(1897~1926)이 화제다.

윤심덕은 일제 강점기 시절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로 당시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을 '신여성'이라고 일컬었다. 윤심덕은 이를 대표하는 여성 인물이다.

윤심덕은 1897년 평양에서 4남매 가운데 둘째 딸로 태어났다. 기독교 신자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그의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신식 교육을 시켰다.

남매들 모두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여동생 윤성덕은 피아니스트, 남동생 윤기성은 바리톤 성악가로 활동했다.

윤심덕은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뜻이 있어 총독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최초의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가쿠인을 거쳐 도쿄음악학교 첫 조선인 유학생이 됐다.

일본에 있을 당시 1921년 동우회 등의 순회극단에 참여하며 함께 바다에 투신하는 극작가 김우진을 만난다. 그는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윤심덕은 1923년 한국으로 돌아와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지며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성악이 생소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생계가 나아지질 않자 김우진의 권유로 연극단체 토월회에 들어가 연극배우로 일했다.

 

윤심덕은 각종 스캔들에도 휘말리기도 했다. 함경도 출신의 재력가와의 혼담이 오갔지만 개인적 이유로 깨졌고, 이용문의 애첩이 됐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이후 1926년 7월 윤심덕은 일본 오사카의 닛토레코드회사에서 음반을 의뢰받고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해 8월 3일 김우진과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올라 다음날 새벽 두 사람은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한편 한국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인 8월 1일 녹음한 곡이 '사의 찬미'다. 

 

/이수연 기자 0123ls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