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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생진이 지난주 38번째 시집 '무연고'를 출간했다. 그는 올해로 90세다. 노시인의 기사를 읽는 중 이 대목에 눈길이 갔다. "나도 시인이 되려고 발버둥 치던 시절이 있었다." 발버둥을 칠 정도로 하고 싶었던 시인(詩人). 하긴 우리도 한때 시인이 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고, 밤잠을 설치며 무언가를 끄적였던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금도 11월이 오면 그렇게 밤을 꼬박 지새우는 사람들이 있다. 신춘문예 지망생들이다.

신춘문예 역사는 백 년이 넘었다. 1914년 12월 10일 매일신보 1면을 장식한 '신년문예모집'이 그 시작이다. 1919년 매일신보가 '신년현상공모'를 냈고, 1924년 동아일보, 이 신문의 주필 겸 편집국장이던 벽초 홍명희가 단편소설, 신시, 가극, 동요, 가정소설, 동화 등 6개 부문에 걸쳐 '현상문예 대모집'이란 이름으로 작품을 공모했다. 이때 아동 문학가 윤석중(尹石重)과 한정동(韓晶東)이 등용 1호의 영예를 안았다. 그 이듬해부터 일간지들이 앞다퉈 신춘문예를 공모하기 시작했다. 문단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일간지의 신춘문예는 여전히 가장 권위 있는 등용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찬바람이 불자 약속이나 한 듯 신문마다 신춘문예 공고가 게재되고 있다. 경인일보도 '기해년, 문단의 샛별을 찾습니다'는 제목 아래 '201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공모' 사고가 나갔다. 경인 신춘문예는 경인지역 언론사 중 유일한 작가 등용문이다. 1987년 첫 당선자(소설·시·시조)를 배출한 이래 어느덧 서른 해를 넘겼다. 어려움 속에서도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신춘문예가 지속된 것은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경인 신춘문예로 배출된 작가들이 지역 문단은 물론 중앙 문단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신춘문예를 통해야만 큰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문이나 문예지, 기성작가의 추천을 받지 않고서도 훌륭한 작품을 남긴 작가도 적지 않다. 지적 문체와 듬직한 역사의식을 가졌던 이병주(李炳注)가 그런 경우다. 하지만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수많은 작가들은 한국 문단의 기둥이 됐고, 역사가 됐다. 신춘문예를 통해 역량 있는 신인들의 출현을 기대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경인일보 신춘문예 공모에 신선한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응모해 한국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길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