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산업화'와 김대중의 '민주화'
특별한 시공간 견인했던 남달랐던 리더십
한국당 권력투쟁·여권 차기대권 예비 암투
진로 잃은 '맹목적 정치' 대한민국 위기 본질

2018112701001900500090701
윤인수 논설위원
현재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우리 현대사에 뚜렷했던 대립적인 시대정신에 기원을 두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다. 보수 정당은 산업화를 통해 이룬 경제적 성취를 성장판 삼아 오늘에 이르렀다. 진보 정당은 민주화 과정에서 획득한 우월적 도덕성에 발을 딛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주역은 박정희다. 그는 정변을 통해 장악한 독재권력으로 경제건설에 전력을 쏟았다. 집권 당시의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정권의 슬로건은 '조국 근대화'였다. 말 장난일지 모르나, 당시 한국 경제는 당대의 현대화를 꿈 꾸기엔 근대화 수준에도 한참 모자랐다. 전부 맨땅에서 시작했다. 머리카락 부터 시작해 돈이 될만한 건 모조리 내다 팔았다. 무역의 시작이었다. 고속도로를 깔고 제철소를 짓고 조선소를 세웠다. 제조업의 출발이었다. 모든 일이 최초의 시도였다. 경제부흥의 신화와 에피소드는 바로 그 '최초'에서 잉태되고 탄생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유보했다. "민주주의도 경제건설의 토양 위에서만 자랄 수 있다"고 단언했다. 말대로 됐다. 경제성장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욕망을 키웠다. 그 욕망이 분출하는 순간 그의 하수인은 그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민주화 시대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김대중(DJ)은 어떤가. 그는 박정희가 유보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저항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결코 유보할 수 없는 가치였다. 목숨을 걸고 국가 권력 전체와 맞섰다. 현해탄에 수장될 뻔 했고, 망명의 설움을 삼켜야 했다. 박정희 사후 우여곡절을 거쳐 대통령이 된 DJ는 IMF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지금이라면 진보세력이 질색할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삼았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획득한 국민적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국제적인 리더십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아 국격을 높였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낳은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는 특별한 시공간이다. 그 시대를 견인한 '특별했던 리더십'은 존중받아야 한다. 진보진영은 박정희의 말대로 그의 무덤에 침을 뱉는다. 일본군 다카기 마사오의 흔적을 저주하고, 일본의 배상금과 월남전 목숨값을 이유로 산업화를 조롱한다. 그래도 박정희의 산업화 업적을 다 덮지 못한다.

보수진영은 DJ를 진보진영의 사회주의적 경향의 원조로 평가절하한다. DJ로 부터 시작된 햇볕정책의 폐해만을 주목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조차도 DJ가 목숨 걸고 지켜낸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정치자금 수수, 가족비리와 같은 흠결에도 DJ의 민주화 업적은 꿋꿋하다.

역사적 시대를 견인했던 의미심장한 리더십이 사라진 지금, 그 시대가 남긴 업적은 무너지고 유훈은 희미해졌다. 대신 적폐와 길 잃은 리더십만 남았다.

보수세력이 먼저 무너졌다. 권력 내부의 민주화를 외면하고 시대착오적인 권위를 떠받들다 무너졌다. 산업화 시대의 계승자로서 그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만 물려받았다. 박정희의 시대정신은 까먹고 그 시대의 적폐만 남겼다. 적폐만 남은 폐허에서 의미없는 내부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으니 처연하다.

진보진영은 새로운 적폐를 쌓아가는 중이다. 민주화 시대가 목숨을 걸고 남겨 준 민주주의 가치가 독선과 독단의 수단으로 전락중이라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이념적 자유와 인권이 경제적 자유와 법인의 권리를 압도한다. 정부와 민노총의 갈등에서 보듯이 이념과 가치의 주도권 다툼으로 진영내부는 시끄럽고 민주적 절차와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박정희는 산업화 시대를 열기위해 권력을 잡았고 DJ는 민주화 시대를 견인한 결과로 권력을 얻었다. 권력의 바탕에 시대정신이 있었다. 시대정신을 벗어던진 권력의 알몸은 추하다. 자유한국당의 내부 권력투쟁이나, 여권의 차기 대권 예비 암투가 그렇다. 시대의 진로를 상실한 맹목적 정치. 대한민국 위기의 본질이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