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뉴스레터·제철농산물 꾸러미…
온·오프라인 '구독서비스' 즐겨
취향맞춤 그림부터 기부까지 '다양'
'결정장애·귀차니즘' 현대인에 인기
소유 욕망과 공유 사이 '갈팡질팡'
이렇게 요즘 나의 일상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다양한 각종 구독 서비스와 함께 흘러간다. '구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신문이나 잡지, 우유를 먼저 떠올린다면 당신은 확실히 옛날 사람이다. 최근에는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다양한 구독 서비스들이 나와 있다. 무늬만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인 내가 이용하지 않는 구독 서비스만 해도 차고 넘친다. 유튜브 프리미엄, TV 공중파 프로그램 서비스 앱, 각종 메모리 제공 앱처럼 실용적인 서비스는 기본이다. 뭐니뭐니해도 요즘 뜨고 있는 구독 서비스는 무엇보다 '개인의 취향 저격'을 노린 종류의 것들이다. 수제 맥주와 안주 세트, 고급 와인, 커피 원두 등의 먹을거리는 물론 옷, 화장품, 향수, 면도기까지도 정기적으로 구독 가능하다. 꽃 배달이나 디자이너가 골라 보내주는 양말을 구독하는 서비스도 있다. 문화생활을 위한 구독 서비스로는 일정한 주기로 그림을 바꿔가며 빌려주는 그림 구독, 동네 서점의 신간 정기 구독,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클럽, 취미(하비인더박스)와 덕질(루크 크레이트)을 위한 구독까지 순항 중이다. 사회적 문제를 구독 모델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칫솔과 치약, 노숙인을 돕는 잡지와 소정의 기부금을 월 1만원에 제공하는 닥터 노아, 3개월마다 미혼모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구독품으로 받으면서 미혼모들의 자활을 돕는 크래프트 링크 등이 그것이다.
구독 서비스는 다양하지만 결국 선택은 고객의 몫이다. 고객들이 구독 서비스를 선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결정 장애'자들이 많아진 요즘, 돈을 쓸 때조차 귀찮고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건 질색이기 때문에 내 시간을 절약해주는 서비스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배달 앱, 각종 유료 대행 서비스, 모바일 간편 결제 등과 함께 구독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데에는 바로 이런 '귀차니즘'을 대행해준다는 특징이 있다. 발품이나 온라인 손품을 팔지 않아도 보장된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맥주는 '비어 마스터', 꽃은 '플로리스트'처럼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추천할 만한 것'을 골라 보내주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이 보장된다. 선택해야 하는 고민은 전문가가 줄여주고, 한 번만 등록해 놓으면 정기 배송으로 번거로운 주문 절차나 매번 결제하는 수고 없이 알아서 결제가 되는 것도 편리하다.
하지만 이런 구독 서비스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바쁠 때에는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돈이 무색할 정도로 이용은커녕 그런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넘어갈 때도 있다. 뭔가를 고르고 선택하기 귀찮아서 이용하는 서비스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이용하려면 그만큼의 신경을 써야 하니 이러나저러나 귀찮긴 마찬가지라는 사람들도 있다. 난 아직 구독이 주는 편리함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빠져있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구독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간단히 해지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허무해지기도 한다. 당장은 내 것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인터넷이 끊어지는 순간 내 것이 될 수 없는, 아니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스트리밍 음원 서비스처럼 말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자동차마저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포르쉐 패스포트)가 등장했다고 하니 '소유'에서 '공유'로의 변화는 거스르기 어려워 보인다. 구독 서비스 덕에 공유 문화가 확장되고 있다는 해석은 아직 좀 과한 측면이 있지만, 최소한의 소유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과 '소유' 대신 '공유'로 넘어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신선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당장은 즐거운 '구독러'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강렬한 소유에의 욕망과 '공유'라는 대세 사이에서 갈 지(之)자 행보를 당분간은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