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첫 재판이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서 열렸다. '엘 차포'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마약왕인 구스만은 200t이 넘는 마약밀매, 돈세탁, 살인교사, 불법 무기 소지 등 17건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재판에서 구스만은 "전·현직 대통령에게 수억 달러를 줬다"고 진술했다. '세기의 재판'이 끝난 3일 후 넷플릭스는 멕시코 마약카르텔의 변천을 다룬 '나르코스: 멕시코'를 공개했다. 이 드라마는 왜 멕시코가 마약 천국이 됐는지, 멕시코 공권력이 마약 밀매꾼들에게 왜 그렇게 무력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멕시코는 나라 전체가 마약 카르텔의 범죄로 큰 혼란을 겪는 중이다. 이 지경이 된 건 부패한 정부 관리와 경찰이 잔악한 갱단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정부관리는 뭉칫돈을 받고, 경찰은 순간의 달콤함에 현혹된 마약을 운반해주고 그 대가로 푼돈을 손에 쥔다. 멕시코 국민들은 경찰을 믿지 않는다. "멕시코 경찰 제복이 피와 코카인 가루에 물들어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경찰 제복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마약산업이 번창했다.
우리 경찰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확실히 변했다. 아마도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에 대비해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상당수 국민도 경찰의 수사권독립에 우호적인 편이다. 그러나 경찰이 보는 앞에서 노조원들에게 무참하게 폭행당한 유성기업 상무 사건은 경찰에 수사권을 넘겨줘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기업 측과 노조 측만 바뀌었을 뿐 과거 늘 권력 편에 선 '진짜' 경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다.
사건이 터진 지 3일이 지난 어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과했다. 경찰도 당시 대응이 적절했는지 감사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장관과 경찰청장이 유성기업을 찾아가 사과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폭행이 벌어지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민노총 앞에서 무력함을 보여주며 스스로 제복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경찰 제복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제복의 강건함이 우리 사회를 안정시킨다. 위대한 공권력은 제복의 권위에서 나온다. 멕시코가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제복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제복의 권위는 국민이 주는 게 아니다. 경찰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