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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호 김포소방서장. /김포소방서 제공

불은 우리가 생활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화재(火災) 또한 인간과 불과의 불가분 관계로 볼 때 우리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불을 사용해왔으며, 불의 사용은 사람이 동물과 다르게 진화하는 근본적인 토대이자 인류 문명이 발전하는 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불을 처음 사용한 원시시대부터 첨단 장비와 신속한 재난관리 시스템을 갖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화재는 여전히 우리 소중한 생명의 빛을 꺼뜨리고 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국에 총 4만4천178건의 화재가 발생, 이로 인해 사망자 345명 포함 총 1천852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재산피해는 집계액만 5천억원이 넘었다. 그중 12월에 사망자 29명, 부상자 29명이 발생한 충북 제천 복합건물 화재는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나 또한 국민의 한사람으로, 또 소방인으로 지켜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일선 소방서장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던 사건이다.

충북 제천 복합건물 화재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올해 1월, 밀양 세종병원에서 또 큰 화재가 발생했다. 더 이상의 대형화재 참사를 방지하고자 정부와 소방청은 인명피해 가능성이 높은 전국의 취약시설 55만4천개동(건물)에 대해 2019년까지 소방·건축·전기·가스 등 화재안전과 관련한 분야를 모두 연계한 화재안전특별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점검하고 대책을 세워도 화재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고 특히 주택이나 빌라 등 주거시설, 숙박시설,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심야시간대 불이 나면 많은 인명피해가 뒤따른다. 그러한 화재에 따른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늘 강조되는 것이 신속한 출동이다.

화재현장이 주택이나 상가 밀집지에 위치하고 협소한 진입도로와 불법주정차 등 구조적인 문제로 구조·구급 출동이 지연된다면 그로 인한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소방차는 소화용수와 각종 화재진압 장비 등을 싣고 있어 도로가 막히지 않더라도 신고자가 기대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어렵다. 여기에 출퇴근시간대에는 도로가 정체돼 출동시간은 더 지연될 수밖에 없다.

소방관들은 현장출동 중 도로에서 발이 묶인 채 운전자들이 길을 터주기만을 기다려 보지만, 흔히 말하는 모세의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물론 도로여건이 여의치 않아 부득이하게 옆으로 피하지 못하는 운전자도 있으나 도로에 서 있는 시간 동안 소방관의 가슴 속은 타들어 간다. 119에 신고한 국민의 속 또한 까맣게 타들어 가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겹게 큰 도로를 지나 화재 등 재난현장 인근에 도착하더라도 좁은 도로나 이면도로에 무질서하게 주정차해 놓은 차들이 또다시 소방차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결과적으로 소방차가 현장에 늦게 도착하면 그 화재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서서히 열이 실내에 축적됐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실내전체에 화염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플래시 오버' 현상이 일어난다. 플래시 오버에 도달하는 시간은 대상물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략 화재 발생 후 5분께 발생한다. 즉, 화재 발생 후 5분이 지나면 그 피해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의미다. 응급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학적으로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인 4분 이내에 인공호흡, 가슴압박 등 응급처지를 하지 않으면 소생률은 급격히 내려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생률은 더욱 희박해진다.

이처럼 화재출동이나 구급출동에 있어 초기 골든타임 4~5분은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느냐,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느냐 판가름 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일선 소방관서에서는 소방차의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해 '소방차 길 터주기 운동' 홍보를 꾸준히 전개하지만, 국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소방차의 출동시간 단축 여부는 국민들의 '소방차 길 터주기 운동' 참여와 남을 배려하는 주차질서 의식에 달려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그 누구도 언젠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소방차가 도착하기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소방차의 출동로는 바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로'라는 것을 잊지 말고 '소방차 길 터주기 운동'의 적극적인 참여를 국민들께 당부하며, 소방차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기 위해 재난현장까지 막힘없이 달릴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배명호 김포소방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