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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찬미' 윤심덕 김우진 누구. 현해탄 동반자살설 재조명. /SBS TV시네마 '사의찬미' 홈페이지
 

SBS TV시네마 '사의찬미' 실존인물 윤심덕·김우진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윤심덕은 일제 강점기 시절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로, 당시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인 '신여성'으로 꼽혔다. 

1897년 평양에서 태어난 윤심덕은 4남매 중 둘째였다. 기독교 신자였던 그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자녀들에게 신식 교육을 시켰다.

 

윤심덕의 남매들은 모두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여동생 윤성덕은 피아니스트, 남동생 윤기성은 바리톤 성악가로 활동했다.

윤심덕은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해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이후 음악에 대한 뜻을 이루고자 총독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최초의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아오야마 가쿠인을 거쳐 도쿄음악학교 첫 조선인 유학생이 됐다.

일본에 있던 윤심덕은 1921년 일본유학생들이 결성한 순례극단 동우회에서 김우진을 만났다. 두 사람은 순례 공연을 하며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김우진은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1923년 윤심덕은 한국으로 돌아와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지며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성악이 생소했고, 윤심덕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김우진은 연극단체 토월회에 들어가라고 권유했고, 윤심덕은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신여성 윤심덕은 항상 소문에 휘말렸다. 함경도 출신의 재력가와의 혼담이 오갔지만 개인적 이유로 깨졌고, 이용문의 애첩이 됐다는 스캔들도 있었다. 

이후 1926년 7월 윤심덕은 일본 오사카의 닛토레코드회사에서 음반을 의뢰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해 8월 3일 윤심덕과 김우진은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올랐고, 다음날 새벽 두 사람은 자취를 감쳤다. 

 

이에 당시 언론에서는 두 사람이 현해탄에 투신했다고 보도했고, 이는 기정사실처럼 굳어졌다.
 

한편 한국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인 8월 1일 녹음한 곡이 '사의 찬미'다. '사의 찬미'는 Death Song으로 죽음을 찬미하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다음은 '사의 찬미' 가사 전문.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苦海)에 /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 너 속혔음을 네가 아느냐 /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김지혜기자 keemjy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