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은 옳았으나 강도는 지나쳤다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경제문제'
올바르게 내고 제대로 채점하는지
올해 마지막 한달 남기고 생각해야
아마존의 열대우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조직한다고 할 때 여러분은 누구를 어떤 이유로 참여시킬 것인가? 수시 서류합격자 발표 몇 시간 전부터 논술학원에 등록하려 줄을 섰고, 일 년에 한 번 대목, 변호사 강사까지 나와서 화려한 말발로 기묘한 문제를 풀어 보이고, 한 번에 10만원씩 하는 수강료를 못 내서 야단이고. 이리 난리를 치고 중무장을 했는데, 기껏 이리 평범한 문제? 라고 할지 몰라도, 학원과 기출문제 중심으로 준비한 수험생에게는 당혹스러운 문제였다. 지문의 형식이 예전과 달랐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치러진 서울대 사회과학 오전 구술고사 문제를 이야기하는 거다.
국어 31번 문제가 애초 의도한 국어와 물리의 융합적 독해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닌 국어 공부 자체를 무시한 것이라면, 서울대 구술문제는 기교는 없되 뚝심이 있지 않을까? 몇 가지 지문을 연계하여 비교하고 적용하는 기존의 방식에 맞추는 테크닉을 학원에서 몰입하여 배운 수험생을 걸러내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자기 논리를 만들어 온 수험생에게 익숙하고 편한 문제를 출제자가 의도했다면, 성공이다. 교육적 명분이 있는 변화를 시도한 것이니, 박수.
이제 수능 성적표를 받았고, 곧이어 수시 결과가 마무리되고 정시를 끝으로 2019학년도 대입이 정리된다. 인생 성적. 부모 입장에서는 12년 자식 농사를 수확하는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치열하고 보편적인 욕망이 부모의 자식 성적이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 너무 걱정한 것들, 안 해도 되었던 것들, 그걸 안 했으면 낭패를 볼 뻔했던 행운. 자식이 틀린 걸 문제 탓으로 돌리며 구시렁거리던 부모들도 이제 성적표가 나왔으니 수긍을 하고 그것에 맞추어 최적의 길을 찾으리라.
올 수능부터 특히 정치적인 인물들의 현수막이 거리마다 채워졌다. 직원 자녀의 수능을 챙기지 않는 기관장은 소통을 모른다는 핀잔을 듣는 판이다. 하지만 어떡하든 등수를 매기고 불합격을 시켜야 하는 수능과 대입 제도를 만든 우리가 '에브리바디 수능 대박'을 외쳐대는 건 블랙코미디다. 수능과 달리 경제나 일자리는 '에브리바디 해피'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나라 돌아가는 걸 보면 아, 말을 하지 말자. 모두가 만점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수능 출제의 안타까운 목표라면, 모두를 만점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정책목표이자 경제정의인 것을. 국어 31번 문제는 방향은 옳았으되 강도가 지나쳤다. 소득주도성장, 방향은 옳지만, 그 수단인 최저임금은 인상 폭과 속도가 과하다? 그렇다면 사교육을 머쓱하게 하면서 부드럽고 살그머니 제대로 된 입시 길을 텄다 할 서울대 구술문제 같은 경제정책은 어떻게 마련할까.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경제문제는 경쟁과 등수 매기기가 아니다. 한쪽을 이겨야 내가 생존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 아니다. 다 함께 마음을 내어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그럴 때 풀리는 것이고, 그리하여 각자도생할 때 보다 풍성하고 마음 편한 몫이 우리 앞에 보답으로 주어질 것이다.
삼한사미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는 낯선 겨울. 털옷과 함께 미세먼지 마스크를 챙긴다. 국민들은 이렇게 묵연히 세상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려 한다. 우리는 지금 올바른 문제를 내고 있고 제대로 채점을 하고 있는지. 한 해의 마지막 한 달을 남기고 생각해 볼 일이다. 국어시험에 국어 문제를, 경제문제는 다 함께 풀기.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