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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조선시대의 휴정(休靜)선사는 우리에게 서산(西山)대사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무리 뛰어난 도인이라도 모함과 질시는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무업(無業)이라는 중이 서산대사의 시 등향로봉(登香爐峰)의 내용을 트집 잡아서 역심을 품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과 같고 천가의 호걸들은 파리와 같구나. 창가 밝은 달은 맑은 허공을 베개 삼고 그칠 줄 모르는 솔바람 소리 가지런하질 않네. 여기에서 임금이 사는 도성(都城)을 개미가 사는 굴에 비유한 것을 트집 잡은 것이다.

이에 대해 선조임금이 대나무 그림을 곁들여 묵죽시를 내렸다.

그 시에 이르길, 잎은 붓끝에서 나왔고 뿌리도 땅에서 나오지 않았네. 달이 비추어도 그림자가 보이질 않고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들리질 않네. [葉自毫端出(엽자호단출)根非地面生(근비지면생)月來無見影(월래무견영)風動不聞聲(풍동불문성)] 그림에 묘사된 대나무의 잎과 뿌리 그리고 달과 바람은 모두 실제가 아닌 그림일 뿐이라는 뜻으로 서산대사의 실제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마음을 그림과 그에 관한 시로 전한 것이다. 신뢰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는 풍류가 느껴진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