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핵 포기'·'체제 보장 유지'
북미간 불신에 국민들 의견도 갈려
'교황 방북' 새로운 전환점 될수도
이제 우리는 운명의 길 가야할 시점
진지한 소통으로 내부 갈등부터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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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근래 들어 남한과 북한은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관계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양쪽 정상이 벌써 세 차례나 회담을 가졌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북한 노동자 연맹이 휴전선 아래로 내려와 축구 경기를 했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남측 관계자들이 바로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남북 간의 철도 연결을 위해 실사팀이 실험 운행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는 약 10년에 걸쳐 매년 한두 번씩 평양을 다니며 민간 차원의 교류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 남북 교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북측 젊은 리더는 과거의 체제로는 이제 더 이상 지도자로서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립각만 고집해서는 고립만 가중될 뿐 국민을 부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경제의 안정 없이는 체제가 붕괴될 것이고 국가의 존립마저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통일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양측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된 것인가? 남측이 북측을 흡수하는 형태가 되나? 아니면 연방제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양 체제는 각각 유지되나? 국가 구성 체제부터 주변 열강들과의 이해관계까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잘 진행되는 듯 보이던 남북의 평화 로드맵이 또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엔은 북한의 모든 경제 활동을 제재하기로 결의한 바가 있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고 다음 일을 도모해야 하는데, 도무지 이 제재가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미국은 보다 더 확실한 핵 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북은 여러 차례 핵 포기를 언급은 했지만 확신이 들 만큼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양자는 서로를 완전히 믿지 않습니다. 미국은 과거 경험에 비추어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도 남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북한은 자신들이 핵과 관련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순간, 미국이 약속한 체제 보장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런 북미 간의 불신에 더하여 남쪽 국민들의 의견도 반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미국처럼 과거 경험에 견주어 북한을 불신하는 쪽과, 이제 북한은 경제 개방 외에 살 길이 없으니 핵 포기에 관한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주자는 쪽으로 선명하게 나뉘어 서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로의 의견을 듣고 타협과 양보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남북의 평화 로드맵은 이 불신 때문에 아주 천천히, 그리고 완만하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교황의 방북은 이 불신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가톨릭 신자이고 유엔 상임이사국과 영향력 있는 회원 국가들 역시 대부분 가톨릭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교황의 방북이 다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의 평화를 위해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합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 한반도는 평화로 향한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느리게 가든 빨리 가든 이 운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 길을 걸으며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북한과의 관계 구축에 앞서 우리 안의 갈등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입장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라 몇십 년에 걸쳐 축적된 것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진지한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풀어야 합니다. 정치권도 치적을 통한 인기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SNS시대에 토론의 장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소통에 참여하는 각 개인도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먼저 상대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상대의 주장만 헐뜯지 말고, 그 주장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곱씹어봐야 합니다. 이런 과정 없이 결과만 바라서는 결코 한반도의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체제가 하나라고 의식이 하나가 되는 건 아닙니다. 과정 없는 평화는 머지않아 또다시 분열을 만들 것입니다. 다음은 한반도 평화를 꼭 이뤄내야 한다는 소신입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남과 북은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단 북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 역시 이대로는 출구가 없어 보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을 어떻게 갖추고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