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서쪽으로 약 80㎞ 떨어진 추오 고속도로의 사사고 터널에서 두께 8㎝의 콘크리트 천장 상판이 무너져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년 전 동일본 대지진의 후유증이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이 사고는 '세계 최고의 안전국가'로 자부하던 일본정부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사고 터널 사고 후 일본 정부는 노후 인프라에 대한 강도 높은 유지보수 투자방안인 '인프라 장수명화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전후에 지어진 일본 내 기반시설이 수명을 다해 유지관리 비용이 치솟은 상황에서 사사고 터널 사고가 일대 전환의 기회가 된 것이다.
미국도 1966년부터 2005년까지 노후교량 1천500여개가 무너지자 2012년 '성능 평가 기반의 자산관리 법안(MAP-21)'을 수립했다. 영국은 재무부 산하에 인프라사업청(IPA)을 두고 인프라 업무를 총괄하고 있고, 프랑스는 국토평등위원회(CGET), 호주는 인프라호주(IA)를 통해 국가 차원에서 인프라 수요를 파악하고 재원 조달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늙어간 선진국도 시설 노후화라는 심한 몸살을 앓은 후 이런 대책들을 만들었다.
시설물 노후로 인한 사고는 사전에 다양한 징후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징후에 애써 눈 감는다. 그렇다고 위기의 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를 '회색 코뿔소(Gray Rhino)' 현상이라고 한다. 위험 신호가 계속되는데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회색 코뿔소가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사람처럼 시설물도 나이가 들면 늙는다. 교량이나 하수관, 도로 등 시설물들도 시간이 가면 노후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대적인 보수를 해야 한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당장 눈앞에서 사고가 나지 않으면 예산 사용 순위는 언제나 뒤로 밀려나게 마련이다.
일산 평촌 분당 등 경기도내 1기 신도시는 30년 된 늙은 도시다. 사람으로 치면 60세를 넘어선 나이다. 사람처럼 인프라 이곳저곳에 동맥경화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노후 인프라 시설 개량을 위한 기본계획은 물론, 노후 인프라 투자 결정을 위한 컨트롤타워조차 없다. 그나마 대형 사고가 발생해야 '조금' 정신을 차린다. 이번 백석역 온수관 파열 사고는 어찌 보면 우리에게 던지는 고마운 경고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를 외면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