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엔진 멈추고 계산적 사업가만 넘쳐
정당정치에 이데올로기 대신 도덕적 해이
좌면우고의 '황금돼지 해' 되길 기대한다

특히 그가 20년 동안 공을 들여온 세계최초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가 결실을 맺고 있어 더 의아하다. 인보사는 지난해 국내 허가획득 이후 중국, 홍콩,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에 제품 수출은 물론 지난달에는 글로벌 제약사인 먼디파마와 6천677억원의 기술수출 계약까지 체결했다. 4대강 사업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개연성이 큰 데다 고(故) 장자연 사건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말들도 나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회장직 퇴임사에 주목했다. 이제는 편히 쉬어도 흉이 될 것이 없는 이순(耳順)의 나이에 금수저를 내던지고 새로 창업에 도전하겠다니 말이다. 어떤 사업을, 어떻게 시작할지가 관건이나 만일 창업에 성공한다면 그는 국내 최고의 늦깎이 창업기업가로 기록될 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늦은 나이에 창업해서 성공한 사례는 고(故) 조홍제인데 그는 56세에 사업에 착수해서 효성그룹을 완성했다.
1996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잉크' 편집장이 경영학의 큰 스승인 피터 드러커에게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충만한 나라가 어디냐?"고 물었다. 드러커 교수는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이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에는 어떤 산업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각국은 산업혁명 이후 200년 만에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것이다. 한국인의 성공신화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도전 엔진이 멈춰버렸다. 시간이 아깝다며 햄버거로 한 끼를 때우고 밤을 낮 삼아 세계시장을 누비던 경영자들 대신 꿀단지만 지키려는 계산적인 사업가들만 수두룩하다. 2015년 KBS 방송문화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는 한국경제가 역동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공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경기침체 극복과 경제활성화가 한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지목했다.
한 나라의 경제역동성을 측정하는 보편적 도구는 '기업교체율'이다. 전체 기업수에서 신생기업과 퇴출기업이 각각 차지하는 비율로 수치가 높을수록 역동적이다. 2015년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 국내 제조업의 기업교체율은 2002년 30%에서 2011년에는 19%로 하락했다. 과거에는 10대 기업의 80%가 새로운 기업으로 교체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는 10대 재벌 순위가 거의 불변이다. 경제성장률은 1960~70년대의 연평균 7% 이상에서 최근 5년 동안에는 3% 미만으로 반 토막 났다.
기업가정신지수도 1976년의 150에서 2013년에는 66으로 급락했다. 2016년말 세계 기업가정신 발전기구(GEDI)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 34개국 중 23위로 중하위 수준이다. 일본은 25위를 기록했다. 기업가정신이란 기업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기회에 도전하는 혁신행동으로 경제성장의 견인차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기업가들의 모험정신이 쇠퇴한다며 자본주의의 장래를 우려했었다. 그러나 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2배 이상인 미국의 경우 최근 경제성장률이 우리나라를 능가했을 뿐 아니라 기업가정신지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유권자들의 표만 의식한 역대 국내 정부들의 천편일률적인 '좌향좌' 지속에 기인한 바 크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개발독재와 정경유착 때문이나 결과적으로 국내 정당정치에는 이데올로기 대신 도덕적 해이가 자리 잡았으며 5천만 국민 모두는 '끓는 물속의 개구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2013년에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회원국 중에서 가장 빠르게 둔화되는바 이런 추세라면 2030년대 후반에는 0%대로 추락할 것이라 경고했다. 좌면우고(左眄右顧)의 '황금돼지 해'를 기대한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