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든 타의든 1년 내내 남북관계에 빠져
경제는 장관 바뀔 정도로 최악의 길 걸어와
나라 존망위기 몰린 '저출산 문제'도 심각
늦었지만 청와대·정부의 '현실 직시'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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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먹방'을 틀어놓고 끊임없이 먹어대는 사람도 있고 격렬한 운동으로 터질 것 같은 압박을 달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도 많다. 하정우 같은 배우는 하염없이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나의 경우, 단연 공포영화 시청하기다. 영화를 보는 동안 공포에 쫄다보면, 스트레스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공포지수가 높을수록 효과는 배가된다. 최근 나홍진의 '곡성'을 봤다.역시 그는 천재였다. 무서웠다. 다시 봐도 정말 무서웠다.

공포에 이리저리 쫓기다가 그 '장면'에 멈췄다. 아니 '장면'이 아니라 그 '대사'에서 멈췄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2016년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그 대사 말이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이 대사에서 가슴이 콱 막혔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그냥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들어서다. 갑자기 눈물도 핑 돌았다. 공포영화를 보면서도 이런 깨달음을 주는 나홍진은 정말 천재다. 2006년 영화 '타짜'의 정 마담이 "이거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외쳐댄 이후, 영화 대사 한 줄이 이토록 유행한 적이 없었다. 유행어는 시대의 산물이다. 2016년 9월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개원사에 사드 반대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언급하자 새누리당이 크게 반발했다. 이를 이유로 새누리당이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격앙하며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이 민생을 정말 죽이려 하는 것인가. 지금 '뭣이 중헌디'라고 묻고 싶다."

자의든 타의든 1년 내내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남북관계 하나에 빠져 지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여정 김영철이 찾아온 이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월 싱가포르 북미회담, 9월 문재인 대통령 평양방문으로 우리의 관심사는 온통 남북문제뿐이었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최근 2~3주 동안 김정은의 서울 답방 여부를 두고 벌인 해프닝은 끔찍했다. 한 해를 결산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그런데 결론은 "연내 답방 어렵다"였다. 그럼에도 그의 답방이 왜 불발됐는지 청와대도 정부도 언론도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올해 우리 경제는 장관이 바뀔 정도로 끔찍했다. 고용률, 실업률 등 고용 관련 주요 지표들이 고용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악의 길을 걸었다. 길거리에 널린 빈 가게,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인력시장, 역대 최대인 실업급여 수급자. 52조원을 쏟아부은 일자리 예산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내년엔 경제가 더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또 있다. '저출산' 문제다. 이야말로 '냄비 속의 개구리'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도, 아프지도, 물론 무섭지도 않다. 정말 그런 날이 올지 지금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초'를 붙여야 할 정도로 저출산 문제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즉 여성 1인이 평생 낳는 아기가 0.95명으로 떨어졌다.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8명)을 크게 밑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최근 12년간 저출산 대책에 120조원 이상 재정을 투입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북한에 홀려 있는 사이 이렇게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2018년이 보름도 남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어느새 50% 이하로 떨어졌다. 취임 후 최저치다. 이제 사람들 입에서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라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제야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이란 게 놀랍지만 어쨌든, 어제 문 대통령이 현 정부 들어 '첫'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을 필요한 경우 보완조치 하라"고 지시했다. 늦은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제라도 청와대와 정부가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은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