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말·행동까지 살피며 진료

젊은 사람들이 무슨 우울증이 있겠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만 살펴보더라도 한국 청년들의 정신건강의 어두운 단면이 금세 드러난다.
이 시대의 청춘은 당연히 아픈 것이 아니라 경쟁적인 학업과 취업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마음의 병이 났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머리가 아프고 속은 더부룩하여 밥맛은 없고 잠을 자고 일어나도 몸이 천근만근이라 일상이 불편해 한의원에 종종 내원한다.
혼자 와서 증상을 표현하는 환자는 그래도 쉽게 치료를 할 수 있지만 말도 안하고 밥도 안 먹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를 않아 애가 탄 가족의 손에 이끌려 내원한 환자는 단순하게 침, 뜸, 한약 만으로의 치료가 아닌 오감을 열어 환자 말과 손짓, 눈빛, 한숨까지 살피며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얼마 전 큰 아이가 밥도 안 먹고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걱정이라며 엄마가 아이를 이끌고 내원했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얼굴을 아래로 떨구고만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엄마가 말한 내용 중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네가 이야기해주렴"이라고 전달한 뒤 그림을 그리라 하고 엄마와 상담을 시작했다.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큰애에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에 아이의 그림은 날카롭게 뭉개며 선을 그리다 하트모양이 되었고 이내 지워졌다.
그래서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아빠 역시 올해 회사일이 바빠 아이와 함께 하던 운동을 못하고 있어 속상해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다시 하트를 그리는 걸 확인했다.
그동안 속상하고 불안한 아이의 마음을 표현해주면서 앞으로 가족들이 작은 시간이라도 큰 아이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1주일 시간표를 작성하자 아이는 하트를 많이도 그렸다.
한의원은 몸의 병을 낫게도 하지만, 마음의 병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환자들은 한의원에 오면 마음이 편하고 하고 싶은 말도 마음껏 하니까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물리적 병리 현상의 많은 경우가 사실은 마음의 근심걱정으로 인해 생기는 몸의 불편이다. 신체의 불편을 완화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마음도 함께 치료하는 것이 한의학 상담치료의 핵심이다.
/고희정 경기도한의사회 사회참여·여성 이사